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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플리즘이라는 대선 전략, 미래 세대에겐 독약이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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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01월06일 17시10분

작성자

  • 김광두
  •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GFIN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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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는 승자 독식의 논리가 지배한다.
특히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 논리가 모든 선거 전략을 지배한다.

요즈음 우리는 거의 매일 대선 후보자들의 달콤한 교언영색(巧言令色)에 황홀할 지경이다.
후보자들이 약속하는 선물꾸러미들이 날마다 현관 앞에 쌓여 가고 있다.
그런데 화려한 포장만 보일 뿐 내용물은 약속어음 종이 한 장이 들어있을 뿐이다. 그것도
은행 지급보증이 아닌 후보자 개인의 서명만 들어있는 어음이다.

유권자들은 흔히 이 선물들의 내용물이 겉포장처럼 쓸모 있을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래서 후보자들은 더 좋은 포장지를 구하려 별짓을 다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란 뭘까? 국가공동체의 구성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투표권을 바탕으로 자기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정치질서이다. 모두가 정치적으로 평등한 목소리를 가지고 자유롭게 정치적 의사를 표현 할 수 있는 정치 제도인 것이다.

때문에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보다 많은 투표권자들이 좋아할 포장지를 구하여 선물로 제공하고, 호감을 얻어 표를 확보하려 한다. 1950년대 초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이 다수의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내걸어 집권했던 경험이 2차대전 이후 이런 흐름의 시초였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의 경제력이 구조적으로 크게 약화되었음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이 지점에서 유권자들의 판단과 선별 능력이 그 국가공동체의 정치 수준이고, 그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전제 군주제에서도 공산주의 체제에서도 여론은 국가적 의사 결정에 절대적 역할을 했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 등은 모두 국민들의 여론을 등에 없고 이루어진 변혁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여론의 형성은 어느 집단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을까?
디지털 기술발달로 페이스 북, 유 투브, 트위터, 카톸, 포탈 사이트 등 SNS가 성행하기 전까지는 소위 엘리트 그룹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이들 간에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고, 그들의 의견 중 다수의 동의를 얻은 견해가 그 시대의 사조(思潮)를 형성하고 그 사조에 따르는 정치인이 국가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 시기에는 공영 방송의 보도, 신문의 사설과 칼럼, 지식인 집단의 연구보고서 등이 여론형성에 지배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다양한 SNS의 발달과 그 활용의 일상적 대중화로 상황이 달라졌다. 여론 형성의 주도층과 주도 채널이 폭넓게 다양화 된 것이다. 미국의 전통적 메이저 언론들과 지식인들이 싫어했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여론 형성 채널의 구조변화에도 일부 기인했다.

이런 여론 형성 과정은 민주주의 질서의 내실화에 도움이 되는 현상이라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포퓰리즘이라는 독버섯이 자라날 토양을 조성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집단 이기주의를 추구하는 특정 집단들의 배타적 소통 채널들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구성원들의 숫자와 목소리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에서 민주노총의 정치적 영향력이 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의 명치유신(明治維新)은 엘리트 사무라이들이 주도했다. 그 성공의 요체는 엘리트 사무라이들의 기득권 포기에 있었다. 국가공동체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자기들이 솔선수범해서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림으로써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질서의 정착에 헌신한 것이다. 이 엘리트 사무라이들은 국가공동체의 발전이 곧 국민후생의 증대를 잉태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은 명치유신으로 선진 문물을 도입하여 선진국가의 틀을 갖추게 되었고, 그 결과 일본 국민들은 동양에서 가장 앞서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었다.

국가공동체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상황을 볼 경우,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오늘도 중요하지만 미래도 중요하다는 인식 구조가 그 관점의 근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단 이기주의가 성행하면 경쟁적으로 자기 집단의 몫을 늘리려는 욕구에 집착하기 때문에 미래보다는 현재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게 된다. 현재 주어진 가용자원 중 자기집단의 몫을 당장 더 크게 하려는 집단의지가 충만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다수의 집단들이 모두 자기 몫을 더 달라고 요구하면서 이 요구들을 표와 연계시킬 때, 이 표를 얻고 싶은 정치인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모두에게 더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일단 표를 얻어야 하니까. 일단 선거에서 이겨야 하니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이런 현상을 정확히 파악하여 각 집단별 득표 전략을 유효성 있게 구사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전남 광주에서는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석을 발로 밟으면서 “전 두환은 내란 범죄의 수괴이고 집단 학살범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용서할 수 없는 학살 반란범이다. (2021.10.22.)”라고 했다. 그런데 경북에 가서는 “전두환도 공과가 병존한다.(2022.12.11.)”고 말을 일부 바꿨다. 광주의 유권자 집단과 경북 유권자 집단의 정치적 성향의 차별성을 잘 포착하여 맞춤형으로 발언을 한 것이다.

그는 국가주도 경제부흥과 기본소득 시리즈를 그의 정책 키워드로 내세워 왔다. 동시에 프랑클린 디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정책을 좋아한다는 뜻을 피력했다. 큰 정부, 기업 규제 등을 함축하는 말들이다. 그런 그가 “나는 원래 친기업적인 사람이다. 내가 진보다. 진보란 진짜 보수를 줄인 말 (2021.11.25.)”이라고 다른 말을 했다. 듣는 유권자그룹에 따라 맞춤형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는 증시 개장일에 증권거래소에 가서 ‘코스피 5000 시대’를 약속하기도 했다.(2022.1.3.) 이런 약속 아닌 약속은 매우 위험하지만 증시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일 수도 있다.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도 서투르지만 유사한 행태를 보여준다. 국가재정의 건전성 유지를 외치고, 시장경제체제의 우월성을 내세우면서도, 장소와 상황에 따라 결이 다른 주장을 한다. “코로나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에게 100조를 지원하겠다,” “노동이사제에 찬성한다,” 등을 아주 쉽게 얘기한다. 역시 해당 집단의 호의를 얻기 위한 약속임은 너무도 분명하다.

 문제는 첫째로 두 후보 모두 큰 정부의 효율성에 대한 고민 부족하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인 부와 소득의 소수 편중이나, 기회의 불평등, 생존권 보호의 미흡 등이 이런 집단이기주의를 표에 비례해서 만족시키는 과정에서 완화되는 좋은 효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좋은 성과는 관련 지출 프로그램의 내용과 구성, 그리고 그 운용이나 풀린 통화의 배분 채널의 특성에 따라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가 초래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중앙은행이 통화를 막대하게 증가시킨 결과,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가 한층 더 심화되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각 후보가 추구하는 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되어 국가 운영의 예측가능성과 효율성이 훼손될 것이란 점이다. 실제 집권하면 이런 파편적 약속들을 지킬 수 있을까? 실제로 지킨다면 약속들 간의 상호충돌이 국가운영의 효율성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게 될까? 모든 약속을 다 지키려면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현행 제도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도 맞춤형으로 바꾼다? 또 각 파편적 제도간의 충돌은? 모든 네거리마다 각각 다른 신호등이 설치되어 있다면 운전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셋째로 더 중요한 것은 두 후보에게서 국가공동체의 미래상에 대한 고민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모든 약속을 지키려면 우리의 조세부담능력과 재정의 지속성이 위협받게 될 것이고, 외환시장이 개방된 상태에서 외국인자금의 이탈도 우려된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외환시장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원확대와 대외 신뢰도 유지를 위해 기업, 산업, 국가경쟁력의 강화가 요구된다. 표를 향한 구애를 위해 남발한 이른바 표(票)퓰리즘의 약속들이 우리의 국가경쟁력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표플리즘의 아픈 역사는 아르헨티나, 그리스, 베네수엘라 등에서 익히 보아왔다. 그 나라의 국민생활이 풍요로운가? 아버지 세대의 포퓰리즘이 자식 세대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고 있는가?

그러나 우리의 정치 현실은 포퓰리즘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 국민 다수의 선택이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고통스러운 부담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현재의 20,30 세대가 안고 가게 될 것이란 점에서 씁쓸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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