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익편취 거래의 ‘관여’행위 판단 및 제도 개선 - 대법원 2023. 3. 16. 선고 2022두38113 판결(태광 사건) 중심으로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5월24일 21시05분
  • 최종수정 2023년05월25일 10시10분

작성자

  • 노종화
  •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 변호사

메타정보

  • 3

본문

 <내용 요약>

-사익편취 거래는 동일인이 기업집단 전반에 지배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에, 공정거래법은 특수관계인(동일인 및 그 친족)이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권 또는 영향력을 통해 사익편취를 도모할 수 없도록, 사익편취 금지와 별개로 이를 지시하거나 관여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금지하고 있다(공정거래법 제47조 제4항).

- 그런데 실제 사건에서 특수관계인이 사익편취 거래를 명시적으로 지시하거나, 직접적으로 관여한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한, 특수관계인이 직접 계열회사와 사익편취 거래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 대부분 특수관계인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가 수혜자가 된다. 이 경우 과징금은 거래 당사자인 회사에만 부과되고, 특수관계인은 시정조치나 형사고발 여부가 문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익편취 규제가 특수관계인에게 직접 적용되기가 쉽지 않고, 이로 인해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 최근 기업집단 태광의 사익편취 사건에서, 대법원 2023. 3. 16. 선고 2022두38113 판결(이하 ‘대상 판결’)은 특수관계인 ‘관여’에 관해서 유의미한 법리를 내놓았다. 대법원은 “특수관계인이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에게 부당한 이익제공행위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였거나, 특수관계인이 해당 거래의 의사결정 또는 실행과정에서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으로부터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와 관련된 보고를 받고 이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인하였다면 그 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특수관계인의 관여 여부는 “행위주체와 행위객체 및 특수관계인의 관계, 행위의 동기와 경위, 행위의 내용 및 결과, 해당 행위로 인한 이익의 최종 귀속자가 누구인지, 특수관계인이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의 의사결정 또는 실행과정에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 관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는지, 특수관계인 외에 실행자가 있는 경우 실행자와 특수관계인의 관계 및 평소 권한 위임 여부, 실행자가 특수관계인의 동의나 승인 없이 해당 행위를 하는 것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가능한지, 해당 행위를 할 동기가 있는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하고, 특수관계인은 “기업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시했다. 이러한 법리는 관여의 문언적 의미에 충실하면서도, 입법목적에 부합하는 타당한 해석이다. 나아가 특수관계인의 지시·관여가 문제되는 형사사건에서도 이러한 법리는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 향후 공정위가 대상 판결을 반영해 관여를 판단할 수 있도록 관련 심사지침 개정이 필요하다. 지시·관여나 사익편취의 중대성이나 심각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고발을 결정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특수관계인이 직접 거래 객체가 되지 않더라도, 거래 당사자인 회사와 함께 과징금을 부과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과징금 규모도 법 위반의 중대성에 비례해 보다 무겁게 부과할 수 있어야 한다.​​


1. 서론

 

주지하다시피,「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의 동일인 및 그 친족(이하 ‘특수관계인’)이 계열사와의 거래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얻고자 하는 행위(이하에서는 주로 ‘사익편취’로 지칭함)를 금지한다(공정거래법 제47조). 다만, 특수관계인이 직접 또는 일정 비율 이상을 소유한 계열사와 거래하거나, 사업기회를 제공받는 경우를 규제 대상으로 한정한다. 사익편취 거래는 동일인이 기업집단 전반에 지배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는 데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에 거래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와 별개로,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고, 책임추궁을 포함해 적극적인 주주 관여활동으로 동일인이 행사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통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공정거래법 역시 특수관계인이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권 또는 영향력을 통해 사익편취를 도모할 수 없도록, 사익편취 금지와 별개로 이를 지시하거나 관여하는 행위를 별도로 금지하고 있다(공정거래법 제47조 제4항). 1)

그런데 실제 사건에서 특수관계인이 사익편취 거래를 명시적으로 지시하거나, 직접적으로 관여한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특수관계인이 직접 계열회사와 사익편취 거래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특수관계인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가 수혜자가 된다. 이 경우 과징금은 거래 당사자인 회사에만 부과되고, 특수관계인은 시정조치나 형사고발 여부가 문제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사익편취 규제가 특수관계인에게 직접 적용되기가 쉽지 않고, 이로 인해 규제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기업집단 태광(이하 ‘태광그룹’)의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이 문제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3. 3. 16. 선고 2022두38113 판결, 이하 ‘대상 판결’)에서, 대법원은 특수관계인의 ‘관여’에 관해서 유의미한 판결을 내놓았다. 본 보고서에서는 대상 판결을 검토하고, 사익편취 관련 제도 개선을 제안하고자 한다.

 

2. 대상 판결 - 태광그룹 사익편취(김치·와인 거래) 사건


가. 사건의 경위


1) 행위 주요 내용

 

태광그룹은 태광산업, 흥국화재해상보험 등 모든 계열회사로 하여금 동일인(이호진) 일가가 100% 소유했던 티시스, 메르뱅으로부터 각각 김치와 와인을 구매하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공정위에 따르면 티시스(휘슬링락CC)는 2014. 4. 영농조합을 통해 김치 제조를 위탁 생산했고, 태광그룹 경영기획실은 거래가격을 정해 각 계열사에 구매 수량을 할당했다. 이에 따라, 각 계열사는 김치를 회사 비용(직원 복리후생비, 판촉비 등)으로 구매해 직원들에게 ‘급여’ 명목으로 지급했다. 또는 계열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내에 직원 전용 사이트(태광몰)를 구축해서, 김치구매 포인트(복리후생비, 또는 사내근로복지기금)를 지급하는 방식을 활용하기도 했다. 계열사들이 법 위반 기간(2014년 상반기~2016년 상반기) 동안 구매한 김치는 총 512.6톤, 거래 금액으로는 95.5억원이다.

와인 거래 역시 경영기획실이 소위 ‘그룹 시너지’ 제고를 목적으로, 2014. 8.경 메르뱅 와인을 임직원 명절(설, 추석) 선물로 지급할 것을 각 계열사에 지시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각 계열사는 회사 비용을 통해 와인을 구매해 임직원 등에게 지급했다. 계열사들이 법 위반 기간(2014년 7월 ~ 2016년 9월) 동안 메르뱅으로부터 구매한 와인은 총 46억원이다.

 

2) 공정위 제재

 

공정위는 계열사와 티시스의 김치 거래는 상당히 유리한 조건(고가)의 거래(구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 제1호)에 해당하고, 메르뱅과의 와인 거래는 합리적인 고려나 비교 없이 상당한 규모로 거래(구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 제4호)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아래 [표1]과 같이 시정명령 및 과징금을 부과하고, 동일인 이호진과, 티시스 대표이사/경영기획실장 김기유 및 관련 계열회사들을 고발했다. 특히 공정위는 이호진이 문제된 사익편취 행위를 지시·관여한 것으로 판단해, 구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4항 위반으로 시정명령(위반행위 금지) 및 고발을 결정했다.

be1ba26b3560dcb41903466afa84f1e3_1684927 

 나. 대상 판결의 주요 내용


1) 원심 판결 (서울고등법원 2022. 2. 17. 선고 2019누58706 판결)


가) 사익편취 거래 해당성에 관한 판단

 

공정위 제재를 받은 계열사들(과징금 및 시정명령)과 이호진(시정명령)은 모두 처분취소를 청구했다. 서울고등법원 2022. 2. 17. 선고 2019누58706 판결(이하 ‘원심 판결’)은 사익편취 해당성에 대해서는 공정위 손을 들어주었다. 원심 판결에서 “구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 제1호의 문언상 '경제력 집중이 발생할 가능성'을 그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음에도, 그것이 위 조항 해당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필수적 요건으로 보기는 어렵다.”라고 설시한 부분은 눈여겨 볼만하다.

 

사익편취 해당성이 문제된 첫 사건(한진그룹 사건)에서, 대법원은 사익편취 조항이 정하는 ‘부당한’ 이익제공에서 “ '부당성'이란, 이익제공행위를 통하여 그 행위객체가 속한 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되거나 경제력이 집중되는 등으로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을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행위주체와 행위객체 및 특수관계인의 관계, 행위의 목적과 의도, 행위의 경위와 그 당시 행위객체가 처한 경제적 상황, 거래의 규모,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되는 이익의 규모, 이익제공행위의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변칙적인 부의 이전 등을 통하여 대기업집단의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유지·심화될 우려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된 이익이 '부당'하다는 점은 시정명령 등 처분의 적법성을 주장하는 피고가 증명하여야 한다(대법원 2022. 5. 12. 선고 2017두63993 판결).”는 법리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즉, 사익편취 규제는 불공정거래행위와 같이 경쟁제한성이나 공정거래 저해성이 요구되지는 않지만,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유지·심화될 우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리는 거래 규모가 적거나, 총수일가가 변칙적으로 얻은 부의 규모가 미미할 때에는 사익편취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을 고려할 때, 원심 판결이 경제력 집중의 발생 가능성이 사익편취에 해당하기 위한 필수적 요건이 아니라는 취지로 판단한 부분은 유의미한 설시라고 판단된다. 물론, 원심 판결이 사익편취 조항에 관한 법리를 자세히 제시하지는 않았으므로, 한진 사건의 대법원 판결 법리를 유의미하게 변경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나아가 원심 판결이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되는 이익의 규모가 적더라도 사익편취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 판결은 김치·와인 거래로 특수관계인에게 귀속된 이익의 규모가 적지 않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나) 동일인 ‘관여’에 관한 판단

 

원심 판결은 이호진이 김치·와인 거래에 ‘관여’했다는 공정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심 판결은 김치·와인 거래가 경영기획실 주도 아래 이루어진 사실, 경영기획실장이 이호진에게 주요 경영이슈나 실적 등을 주기적으로 보고했고, 이호진이 태광그룹의 주요 결정이나 지시사항을 직접 또는 경영기획실을 통해 계열사들에게 전달한 사실은 인정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만으로 경영기획실을 통해 이루어진 모든 결정사항에 관해서 이호진이 관여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티시스가 “운영하는 이 사건 골프장의 영업구조를 개선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것이기는 하나, 태광그룹의 전체 계열회사들의 숫자나 매출의 규모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골프장에서 이 사건 김치거래를 통하여 영업구조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반드시 태광의 동일인인 이호진의 관여 없이 이루어질 수 없을 정도로 태광그룹의 중요한 결정사항이었을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설시했다. 이에 따라, 원심 판결은 이호진에 대해서는 시정조치를 취소했다.

 

2) 대상 판결2) (대법원 2023. 3. 16. 선고 2022두38113 판결)

 

가) 사익편취 ‘관여’ 행위에 대한 법률적 평가 (법리적 판단)

 

대법원은 원심 판결과 달리 이호진의 관여가 인정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특수관계인이 기업집단에 대하여 가지는 영향력을 고려하여 특수관계인의 이익제공행위에 대한 '지시'뿐만 아니라 '관여'까지 금지하고 있는데, 위 각호의 이익제공행위는 직접적인 제공뿐만 아니라 간접적 제공도 가능하고, 특수관계인이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에 '관여'하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특수관계인이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에게 부당한 이익제공행위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였거나, 특수관계인이 해당 거래의 의사결정 또는 실행과정에서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으로부터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와 관련된 보고를 받고 이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인하였다면 그 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시했다. 

 

나아가 특수관계인의 ‘관여’ 여부는 “행위주체와 행위객체 및 특수관계인의 관계, 행위의 동기와 경위, 행위의 내용 및 결과, 해당 행위로 인한 이익의 최종 귀속자가 누구인지, 특수관계인이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의 의사결정 또는 실행과정에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 관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는지, 특수관계인 외에 실행자가 있는 경우 실행자와 특수관계인의 관계 및 평소 권한 위임 여부, 실행자가 특수관계인의 동의나 승인 없이 해당 행위를 하는 것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가능한지, 해당 행위를 할 동기가 있는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하고, 특수관계인은 “기업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법리도 제시했다.

 

나) 김치·와인 거래에서 이호진의 관여


(1) 김치 거래

 

대법원은 김치 거래에 대한 이호진의 관여행위를 인정했다. 배경적인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당시 티시스는 이호진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했던 회사로, 태광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위치한 회사 중 하나였고, 이호진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이 그룹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토대가 됐다. 티시스의 휘슬링락CC에서 지속적으로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경영기획실은 모든 계열사에게 2014. 4.경부터 2016. 9.경까지 구 티시스로부터 정상적인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김치를 매수하는 김치거래를 지시했다. 김치거래로 인한 매출액은 약 100억원이고, 티시스가 얻은 최종 이익은 약 45억원이었다.

 

대법원은 태광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특수관계인 지분이 높은 티시스에 “장기간에 걸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것”인데, 태광그룹의 “의사결정과정에 지배적 역할을 한 이호진이 모르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골프장을 운영하는 회사가 갑자기 김치를 만들어 기존에 수요가 없던 계열회사에 사실상 구매를 강제한 거래이므로, 이호진의 승인 없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시했다. 또한, 김치 거래는 티시스에 “안정적 이익을 제공하여 특수관계인에 대한 변칙적 부의 이전, 태광그룹에 대한 지배력 강화, 아들로의 경영권 승계에 기여하였으므로, 이호진은 티시스의 이익 및 수익구조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보더라도, 김치 거래로 인해 티시스에 귀속된 이익이 적지 않고, 김치 거래의 높은 이익률을 고려하면, 비록 티시스 전체 매출액에서 김치 거래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더라도 회사의 자산증대 및 이를 통한 특수관계인 자산 증대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나아가 이호진은 '그룹 시너지'가 중요 평가항목으로 포함된 계열회사 및 경영진에 대한 평가기준을 승인함으로써 계열회사 경영진으로 하여금 내부거래 특히 이호진 일가 지분이 높은 구 티시스 등을 지원할 동기를 부여했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태광그룹에서 구 티시스가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구 티시스와 다른 계열회사의 거래는 지배구조 관련 중요사항 또는 중요 경영 사안에 해당하여, 경영기획실이 이호진에게 보고할 대상이고, 특히 구 티시스는 2013년 당기순손실이 발생하였으므로, 이호진은 이 사건 김치 거래 등 구 티시스의 실적개선방안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경영기획실장 김기유나 경영기획실이 “이호진 모르게 이 사건 김치 거래를 할 동기가 있다고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호진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이 사건 김치 거래의 경과 등을 보고하여 자신들의 성과로 인정받으려 하였을 것”이라고도 보았다. 

 

관련해서 김기유는 이호진에게 “주요 경영사안, 실적, 기업집단 태광의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된 사항을 수시로 보고하였고, 이호진은 관련한 주요 결정·지시사항을 직접 또는 경영기획실을 통해 전달”했다는 사실이 공정위 조사나 재판과정을 통해 확인됐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경영기획실은 ‘그룹 시너지 창출’이라는 명목 아래 계열회사와 내부거래가 가능한 거래를 외부와 거래하고자 하는 때에는 경영기획실과 협의 또는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의 업무처리지침을 만들어 내부거래 외의 거래를 제한하였고, 이호진은 ‘그룹 시너지’가 중요 평가항목으로 포함된 각 계열회사 및 경영진에 대한 평가기준을 보고받아 승인”하기도 했다. 또한, 태광그룹 소속 임직원들은 티시스가 “이호진 일가 소유의 회사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이호진 일가 소유의 회사가 요구하는 사항을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으며, 경영기획실의 지시사항 특히 그룹 공통 사항은 이호진의 지시사항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도 인정됐다.

 

(2) 와인 거래

 

와인 거래도 김치 거래와 유사한 근거로 이호진의 관여가 인정됐다. 배경적인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메르뱅 역시 당시 이호진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호진의 배우자가 메르뱅의 사내이사로 재직했고, 이호진이 메르뱅의 설립이나 처분 및 배당급 지급 등 과정에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했다고 판단됐다. 이 사건에서 문제된 계열사들과의 거래는 메르뱅 전체 매출의 58%(소매 매출로 한정하면 79%)를 차지했다. 한편, 와인 거래와 관련해서, 경영기획실장 김기유는 2014. 7. 1.경 계열사 대표자 회의에서, ‘메르뱅의 와인 판매 활성화를 위하여 각 계열사의 협력사에 적극 추천’하라고 당부하는 한편, 경영기획실에 매월 실적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2014. 8.경에는 계열사에 임직원 선물로 와인을 지급하라고 특정하기도 했다.

 

대법원이 이호진의 관여를 인정한 구체적 근거를 살펴보면, 대법원은 와인 거래도 모든 계열사가 지배주주 일가가 보유한 메르뱅에 장기간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것이므로, 태광그룹의 의사결정과정에서 지배적 역할을 한 이호진이 모르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와인 거래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메르뱅이 계열회사에 사실상 구매를 강제한 거래이므로, 이호진의 승인 없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보았다. 나아가 결과적으로, “와인 거래는 메르뱅에 안정적 이익을 제공하여 이호진 등 특수관계인에 대한 변칙적 부의 이전에 기여”했고, 그 후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구 티시스에 증여됨으로써 특수관계인의 기업집단 태광에 대한 지배력 강화, 이호진 자녀로의 경영권 승계에도 기여”했다고 보았다. 또한, 와인 거래로 “메르뱅에 귀속된 이익이 적지 않고, 이 사건 와인거래 매출액이 원고 메르뱅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와인거래는 원고 메르뱅의 자산증대 및 이를 통한 특수관계인의 자산 증대에 상당히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이호진이 평소 특수관계인 지분이 높은 회사에 대한 계열회사의 이익제공행위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기업집단 태광 소속 임직원들이 이호진 일가 소유회사가 요구하는 사항을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실제 “이호진은 ‘그룹 시너지’가 중요 평가항목으로 포함된 계열회사 및 경영진에 대한 평가기준을 승인함으로써 계열회사 경영진으로 하여금 내부거래 특히 이호진 일가 지분이 높은 원고 메르뱅 등을 지원할 동기를 부여”한 사실도 이호진의 ‘관여’를 인정할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됐다. 대법원은 “김기유나 경영기획실이 이호진 몰래 이 사건 와인거래를 할 동기를 생각하기 어렵고, 오히려 이호진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이 사건 와인거래의 경과 등을 보고하여 자신들의 성과로 인정받으려 하였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 대상 판결의 의의


1) ‘관여’의 문언적 의미 및 공정위 심사지침

 

관여(關與)의 문언적 의미(표준국어대사전)는 ‘어떤 일에 관계하여 참여함’이다. 공정거래법은 사익편취 관련 조항 등에서 관여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다. 다만, 공정위예규인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 심사지침」(이하 ‘사익편취 심사지침’)은 문언적 의미와 같이 관여를 ‘특수관계인이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에 관계하여 참여한 경우’를 의미한다고 정하고 있다. 3) 

 나아가 사익편취 심사지침은 “지시 또는 관여 여부는 구체적으로 특수관계인이 제공주체의 의사결정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는지 여부, 해당 행위와 관련된 의사결정 내용을 보고받고 결재하였는지 여부, 해당 행위를 구체적으로 지시하였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고 정하고 있다.

 

2) 사익편취 규정상 관여는 지시와 명확히 구분됨

 

공정거래법 제47조 제4항(구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4항)은 ‘지시’와 ‘관여’를 명확히 구분한다. 즉, 특수관계인이 임직원 등에게 사익편취 행위를 지시하는 것과 별개로, 관여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더욱이 사익편취 심사지침은 ‘특수관계인이 지원주체 또는 지원객체의 임직원 등을 비롯하여 누구에게든지 부당한 이익제공행위를 하도록 시킨 경우’를 지시로 정하는 반면, 관여는 ‘특수관계인이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에 관계하여 참여한 경우’로 정함으로써 ‘지시’와 ‘관여’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에 비추어 볼 때, 특수관계인의 지시가 없더라도 사익편취에 관여했다는 사정이 있다면 공정거래법 제47조 제4항 위반에 해당한다.

 

3) 대상 판결의 타당성

 

결국, 특수관계인이 사익편취 거래에 관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관여의 범위로 볼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이에 대해, 대상 판결은 특수관계인이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에게 부당한 이익제공행위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해당 거래의 의사결정 또는 실행과정에서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으로부터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와 관련된 보고를 받고 이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인하였다면 그 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대상 판결이 제시한 법리는 ‘관여’의 통상적 의미, 보편적인 상식이나 일반적인 이해 가능성, ‘관여’를 ‘지시’와 명확히 구분하고 있는 법률조항 체계 등을 고려할 때, 법률조항의 범위 내에서 적절한 해석이라고 판단된다. 특히 사익편취 규정의 취지와 목적, 실효성 등을 고려할 때 매우 타당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익편취는 동일인이 기업집단 전반에 대해서 지배력을 행사하기에 가능한 행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일인이 계열사에게 사익편취 행위를 지시하거나, 말 그대로 직접적으로, 또는 가시적으로 확인되는 참여를 했을 때만 지시 및 관여를 인정한다면, 동일인 본인은 제재를 쉽게 회피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집단 전반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지시나 가시적인 참여 없이도 계열사 등을 통해 사익편취 거래를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상 판결이 “행위주체와 행위객체 및 특수관계인의 관계, 행위의 동기와 경위, 행위의 내용 및 결과, 해당 행위로 인한 이익의 최종 귀속자가 누구인지, 특수관계인이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의 의사결정 또는 실행과정에서 법률상 또는 사실상 관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는지, 특수관계인 외에 실행자가 있는 경우 실행자와 특수관계인의 관계 및 평소 권한 위임 여부, 실행자가 특수관계인의 동의나 승인 없이 해당 행위를 하는 것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가능한지, 해당 행위를 할 동기가 있는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한 것 역시 사익편취 규제의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타당한 판단이다. 

 

동일인이 기업집단 전반에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전제에서 보면, 동일인이 사익편취를 지시하지 않더라도, 이를 장려하는 태도나 입장을 보인 것만으로도 사익편취 거래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나아가 실제로 사익편취가 발생했다면, 동일인이 보인 ‘사익편취를 장려하는 태도’는 동 거래에 관여했다고 평가하더라도 과도하거나 무리한 법 적용으로 볼 수 없다.

 

동일인이 사익편취 거래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이를 승인한 것 역시 사익편취 거래에 관여했다고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동일인이 기업집단 전반에 지배력을 행사한다는 전제에서 보면, 동일인이 사익편취 거래를 사전적 또는 사후적으로 승인하는 것을 두고 동 거래에 관여했다고 하더라도 전혀 무리가 없다고 판단된다. 예를 들어, 동일인이 사익편취 거래에 관해 보고 등을 받음으로써 이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열회사들이 위법성이나 거래의 합리성을 검토하지 않은 채 거래가 계속됐다면, 묵시적인 승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3. 형사 사건에서 동일인 지시·관여 여부 판단


가. 태광그룹 사익편취(김치·와인 거래) 사건

 

태광그룹 김치·와인 사건에서, 공정위는 이호진의 지시·관여가 중대한 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이호진을 고발했다. 공정위는 ① 티시스, 메르벵이 당시 100% 가족회사이었던 점, ② 당시 경영기획실장 김기유가 4) 

 티시스의 대표이사를 겸직했고, 구 메르뱅도 실질적으로 관리했던 점, ③ 김치·와인 거래는 태광그룹의 모든 계열사가 동원된 사안으로 장기간에 걸쳐 142억원 이상의 상당한 규모로 지속됐고, 그룹 지배구조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던 티시스 등을 지원할 목적으로 이루어졌던 만큼, 김기유가 이호진 지시나 관여 없이 단독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예상하기가 어려운 점, ④ 이호진이 김기유로부터 지배구조 개편, 대표이사 선임·유임 결정 및 관련 실적보고를 받은 사실이 확인되며, 주요 현안의 경우 지속적으로 이호진에게 보고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점, ⑤ 과거에도 태광그룹 부당지원 사건에서 이호진이 김기유에게 위반행위를 지시한 전력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김치·와인 거래를 지시하거나 관여한 사실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이호진을 제외하고, 나머지 계열사 및 김기유만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검찰은 이호진이 김치·와인 거래에 관한 재무상황 등을 보고받거나 지시·관여한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보고, 불기소처분(혐의없음)을 내렸다. 반면, 김기유는 김치·와인거래를 주도했다고 보아 기소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가 항고하지 않음에 따라 수사는 일단락됐고, 현재 계열사와 김기유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나. 형사 사건에도 동일인 ‘관여’에 관한 법리가 적용될 수 있음


1) 행정형벌과 행정제재 사이에 동일한 법률조항에 대한 해석이 다를 이유는 없음

 

이호진에 대한 불기소처분은 대상 판결 이전에 있었고, 공정위가 항고하지 않음에 따라 재론될 수 없었다. 그러나 형사 사건에도 대상 판결이 제시한 동일인 ‘관여’에 관한 해석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타당하다.

 

행정형벌은 일반적인 형사범죄와 달리 반윤리성이나 반사회성은 상대적으로 낮으나, 행정목적 달성을 위해 법률로 부과한 의무를 위반했을 때 부과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반윤리성, 반사회성이 뚜렷한 일반적인 형사범죄를 ‘자연범’이라고 지칭하는 반면, 행정형벌은 ‘법정범’으로 지칭한다.5) 

 나아가 일반적인 형사범죄는 형법 각칙과 같이 행위규범을 전제하지 않고 막바로 재판규범만을 정립하는 반면, 행정범은 “먼저 행위규범을 명시한 다음 벌칙조항에서 그 재판규범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법제정형식에 있어 중요한 차이”가 있다. 6) 

 예컨대, 사익편취 거래를 금지하는 행위규범(공정거래법 제47조)이 존재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을 할 수 있는 재판규범(공정거래법 제124조 제1항 제1호)이 별도로 존재한다.

 

이러한 행정형벌의 특수성 및 취지를 고려할 때, 행정제재와 행정형벌의 근거조항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즉, 시정명령 대상인 사익편취 관여와 형사처벌 대상인 관여는 모두 공정거래법 제47조 제4항 위반행위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형사 사건이라고 해서 ‘관여’의 해석 자체가 행정제재 사건과 다를 이유는 없다.

 

2) 입증 정도에도 행정형벌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함

 

대상 판결이 동일인의 ‘관여’를 인정한 구체적인 근거에 비추어 볼 때, 실질적으로 관여행위에 대한 입증책임을 완화했다고 평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상 판결은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관여가 아니더라도, 묵시적인 승인 등 간접적이고 명시적이지 않은 행위로도 관여가 가능함을 인정한 것이지 입증책임 자체를 완화했다고 볼 수 없다. 다만, 동일인의 명시적이고 직접적인 관여행위를 밝히기 어려운 공정위나 수사기관으로서는 결과적으로, 대상 판결이 제시한 정도의 ‘관여’를 입증하기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을 것이다.

 

행정형벌 역시 증거재판주의(형사소송법 제307조)가 적용돼야 하고, 유죄 입증은 엄격한 증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행정형벌의 특수성과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특정 요건에 대한 목적론적 해석을 통해, 결과적으로 규제당국이나 수사기관의 입증 부담이 다소 완화되는 것은 법률유보원칙이나 죄형법정주의 등에 반하지 않는 한 충분히 허용될 수 있다. 나아가 대상 판결이 제시한 ‘관여’의 판단 방법은 형사법 원칙 내에서 행정형벌의 목적 달성을 위해 허용될 수 있는 타당한 해석이라고 판단된다.7)

이와 관련해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초과한 자동차를 운행한 행위가 문제된 대법원 1993. 9. 10. 선고 92도1136 판결(이하 ‘92도1136 판결’)을 살펴볼 만하다. 구 대기환경보전법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는 그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배출가스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운행차 배출가스 허용기준에 적합하게 운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제36조), 이를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했다(제57조 제6호). 위 판결에서는 배출가스 기준 초과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운행한 경우, 즉 과실범도 처벌이 가능한지 여부가 문제됐다.

 

92도1136 판결은 입법목적이나 제반 관계규정의 취지 등을 고려하면, 구 대기환경보전법 제36조, 제57조 제6호는 운행자의 과실로 인해 배출가스 기준 초과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경우, 즉 과실범도 함께 처벌하는 규정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서는 행정형벌에 대해서도 형법총칙이 적용돼야 하고, 과실범은 법률상 특별한 규정이 있는 때에만 처벌할 수 있다(형법 제14조)는 비판이 타당하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위 사건은 고의의 입증이 어려웠기 때문에, 과실범으로도 제재나 기소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92도1136 판결은 과실에 의한 처벌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실제로 해당 사건에서는 차량 사용기간이나 주행거리가 짧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과실도 인정될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일반적인 형사범죄에서도 고의는 행위 자체나 객관적인 정황증거를 토대로 추론될 수 있고, 미필적 고의도 인정될 수 있다. 나아가 행정형벌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행정형벌은 “위반행위의 성질 및 개별 사안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 정황증거에 의한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의 입증의 정도를 보다 완화”를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8)

 

3)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되지 않음

 

형사처벌은 반드시 법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대법원은 행정형벌이 문제된 사건에서,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하여야 하고 명문규정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 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으며, 이러한 법해석의 원리는 그 형벌법규의 적용대상이 행정법규가 규정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경우에 있어서 그 행정법규의 규정을 해석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일관되게 설시하고 있다(대법원 1990. 11. 27. 선고 90도1516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07. 6. 29. 선고 2006도4582 판결 등 참조).

 

행정형벌에 대해서도 죄형법정주의가 적용돼야 함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죄형법정주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대상 판결이 ‘관여’를 지나치게 확장해석했다거나 유추해석했다고 볼 수 없다. 먼저, 대상 판결이 사익편취 규제의 동일인 ‘관여’에 문언적 의미와 구분되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대상 판결은 구체적 사건에서 특수관계인의 관여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평가 방법론 또는 예시를 제시한 것이다. 즉, 대상 판결은 관여로 볼 수 있는 하나의 예시로, 특수관계인이 (ⅰ) 계열회사의 임직원 등에게 부당한 이익제공행위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인 것’, (ⅱ)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와 관련된 보고를 받고 이를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승인한 것’을 제시했다.

 

나아가 대상 판결이 제시한 위와 같은 평가 방법 또는 예시가 ‘관여’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난다고 볼 수 없다. (ⅰ), (ⅱ)와 같은 행위는 동일인이 공식 직책이나 권한을 가지지 않은 채, 기업집단 전반에 대한 사실상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계열회사의 구체적인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공식 직책이나 권한이 없는 동일인이 (ⅰ), (ⅱ) 이상의 명시적인 관여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대상 판결이 “특수관계인은 기업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고 설시한 부분 역시 유의미하다.

 

한편, 형벌법규에 대해서도 법률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지 않는 한 목적론적 해석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02. 2. 21. 선고 2001도2819 판결 등). 나아가 행정형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행정형벌에 대해서는 죄형법정주의의 범위 내에서 목적론적 해석이 일반적인 형벌법규보다 적극적으로 인정될 필요도 있다. 참고로, 행정형벌이나 개별법에서 목적론적 해석이 인정된 주요 사례는 다음과 같다. [표2]와 같이 인정된 목적론적 해석과 이 사건을 비교할 때, 대상 판결이 관여를 과도하게 확장해석, 또는 유추해석했다고 볼 수는 없다. 

be1ba26b3560dcb41903466afa84f1e3_1684928
 

5) 행정제재와 행정형벌의 구분

 

수범자 입장에서 행정형벌은 강제수사 가능성, 제재의 강도를 고려할 때, 행정제재보다 중대한 제재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행정제재와 행정형벌을 무차별하게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앞서 살펴봤듯이 행정형벌에 대해서만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거나, 행정제재와 다른 해석을 적용함으로써 구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보다는 위법행위의 심각성, 피해의 정도, 반복 여부 등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중대한 법 위반에 대해 비례원칙에 부합하는 범위 내에서 행정형벌이 내려져야 한다. 이에 더해 행정제재만으로 규제의 취지가 달성될 수 있는지 여부를 고려해, 행정제재와 별개로 행정형벌이 내려질 필요성이 있을 때 형사적 제재가 시도돼야 할 것이다.

 

공정위는 이미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의 위반행위의 고발에 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침」(이하 ‘고발지침’)을 통해, 법 위반의 중대성을 기초로 고발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지침의 개선 필요성과 별개로, 이러한 방향 자체는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행정형벌 자체의 합헌성 여부가 문제되지 않는 한, 개별 사건에서 행정형벌이 적정한 수단인지, 비례원칙에 부합하는지 등을 본질적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개별 사건에서도 피해 규모나 파급효과, 비난 가능성 등 위법행위의 중대성, 심각성을 고려해 행정형벌을 부과할 필요가 있는지, 부과한다면 비례원칙에 부합하는 양형은 어느 정도인지 결정해야 한다.

 

4. 사익편취 제재 관련 제도 개선


가. 사익편취 심사지침

 

대상 판결은 사익편취 규제의 취지에 부합하게 특수관계인의 관여를 보다 적극적으로 판단하는 법리를 제시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 반면 현행 사익편취 심사지침은 관여와 지시를 명시적으로 구분하면서도, 구체적인 판단 방법에서는 둘을 구분하고 있지 않다. 즉, 사익편취 심사지침은 “지시 또는 관여 여부는 구체적으로 특수관계인이 제공주체의 의사결정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는지 여부, 해당 행위와 관련된 의사결정 내용을 보고받고 결재하였는지 여부, 해당 행위를 구체적으로 지시하였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고 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내용은 실질적으로 관여가 아니라, 지시를 판단하는 방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사익편취 심사지침에서 특수관계인의 지시와 관여를 판단하는 방법을 따로 구분해야 한다. 나아가 관여의 경우, 대상 판결을 반영해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나 평가가 가능하도록 정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아래 [표3]과 같은 방식으로 사익편취 심사지침을 개정할 수 있을 것이다.

be1ba26b3560dcb41903466afa84f1e3_1684928
 나. 고발지침

 

고발지침은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의 대표자,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 또는 특수관계인의 경우 법위반점수가 2.2점 이상인 경우 고발함을 원칙으로 한다(고발지침 제2조 제2항 제1호). 9) 개인의 법위반행위에 관한 세부평가기준은 아래 [표4]와 같다. 한편, 고발지침은 사익편취 행위를 지시 또는 관여한 특수관계인은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한 자”를 고발한다고만 정하고 있다(제2조 제2항 제3호).

be1ba26b3560dcb41903466afa84f1e3_1684928
 

이러한 고발지침 규정 체계에 따르면, 사익편취 행위를 지시 또는 관여한 자는 고발지침 [별표1]과 별개로, 법 위반 정도의 중대성을 평가해 고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고발지침은 법 위반의 중대성을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지시·관여를 통한 법 위반의 중대성을 평가하는 세부평가기준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도 고발지침 [별표1]이 준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과징금고시는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세부평가기준표를 [표5]와 같이 정하고 있다. 과징금고시의 세부평가기준도 특수관계인 지시·관여에 관한 법 위반 중대성 평가에 준용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다만, 과징금고시는 사익편취 행위의 내용(부당성의 정도)과 정도(위반액, 특수관계인 지분)만을 참작해 법위반점수를 평가하고 있다. 특수관계인의 지시·관여에 대해서는 이에 더해, 위반행위의 반복 여부, 지시·관여의 적극성 정도 등도 평가기준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be1ba26b3560dcb41903466afa84f1e3_1684928
 

다. 특수관계인(동일인 및 친족)에 대한 과징금 부과

 

현행 사익편취 규정은 지원 주체와 지원 객체에게 과징금을 부과한다. 즉, 과징금 규정인 공정거래법 제50조 제2항에는 제47조 제4항(특수관계인 지시·관여 금지)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제47조제1항 또는 제3항을 위반하는 행위가 있을 때” 해당 특수관계인 또는 회사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매출액에 100분의 10을 곱한 금액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매출액이 없는 경우 40억원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정하고 있다. 동 조항은 직접적인 행위 주체(제47조 제1항)와 행위 객체(제47조 제3항)에 대한 과징금 부과로 이해되고 있다. 이에 따라, 특수관계인은 본인이 직접 거래 객체가 되지 않는 한, 과징금을 부과받지 않는다. 즉, 특수관계인이 일정 지분을 소유한 계열회사가 거래 객체가 되는 경우에는 해당 회사에 대해서만 과징금이 부과된다. 특수관계인은 지시 또는 관여가 인정되더라도, 대상 판결의 이호진과 같이 과징금 없이 시정조치 또는 형사고발의 대상만 되고 있다.

 

사익편취 규제는 특수관계인이 기업집단에 행사하는 사실상의 영향력 때문에 발생하는 부당한 이익제공을 막기 위한 제도이다. 그렇다면, 특수관계인이 직접적으로 거래 객체가 되지 않더라도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이 입법목적에 부합한다. 사익편취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익을 얻는 주체는 특수관계인이므로, 동 개인에게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이 위헌적이라거나, 과도한 제재로 보기도 어렵다. 나아가 특수관계인의 지시나 관여가 인정될 경우에는 과징금을 보다 가중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대해, 수혜 회사와 특수관계인에게 모두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이중 제재라고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익편취로 인한 전체 과징금 규모는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산정하되, 산정된 과징금을 수혜 회사와 지분을 가진 특수관계인에게 적절히 분배해서 부과한다면, 이중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개정안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be1ba26b3560dcb41903466afa84f1e3_1684928
 

라. 과징금 확대

 

현행 과징금고시는 사익편취 행위의 경우, 위반액을 기준으로, (ⅰ)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의 경우 120% ~ 150%, (ⅱ) 중대한 위반행위의 경우 50% 이상 ~ 70%, (ⅲ) 중대성이 약한 위반행위는 20%를 부과기준율로 정하고 있다. 현행 과징금 부과기준율에 비추어 볼 때, 현재도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징벌적 성격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과징금의 부과 수준은 징벌적 성격이 포함되는지 여부 등을 고려해 입법·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다. 다만, 대기업집단에서 지배주주에 의한 사익편취를 막는다는 입법취지를 고려할 때, 현재 부과기준율을 상향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산정 기준은 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나, 매우 중대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위반액 기준으로 최대 200% 정도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된다. 법 위반의 중대성에 비례해서 행정제재를 무겁게 부과할 수 있어야만, 상대적으로 형사고발에의 의존도도 줄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나아가 공정거래법 제50조 제2항이 정하는 과징금 한도(매출액 기준 10%, 매출액이 없는 경우 40억원)도 상향을 검토해야 한다. 부당한 이익을 제공받은 수혜자는 과징금 한도를 두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특히 특수관계인과 같이 매출액이 없는 경우, 현행 규정에 따르면 사익편취 규모가 막대하더라도 과징금이 최대 40억원까지만 부과될 수 있다. 그렇기에 과징금만으로는 특수관계인의 사익편취 유인을 제거하기 어렵고, 이에 따라 행정형벌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측면이 있다. 따라서 수혜자에 대해서는 과징금 한도를 없애거나, 매출액이 없는 특수관계인의 경우 과징금 한도를 적어도 2배(80억원) 이상 늘려야 한다.

 

5. 결 어

 

대상 판결은 사익편취 거래에 대한 특수관계인의 관여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을 관여의 문언적 의미의 범위 내에서 입법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매우 적절히 제시했다. 형사 사건에서도 대상 판결이 제시한 ‘관여’의 판단방법이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나아가 사익편취 심사지침은 대상 판결을 반영하여, 특수관계인의 지시 또는 관여를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개정할 필요가 있다.

 

본 보고서에서는 사익편취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의 필요성을 자세히 논의하지는 않았다. 다만, 행정형벌은 가능하다면 점차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이를 위해서는 과징금 등 행정제재가 입법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만큼 실효성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먼저, 수혜 회사 이외에 특수관계인(동일인 및 친족)에 대해서도 과징금이 적극적으로 부과돼야 한다. 나아가 특수관계인의 지시나 관여는 과징금을 가중하는 요소로 고려돼야 한다. 한편, 정책적으로 결정할 문제이긴 하나, 과징금 부과기준율을 전반적으로 상향함으로써 징벌적 성격을 보다 강조할 필요도 있다.

--------------------------------------------------------------------

1)공정거래법 제47조(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 ① 공시대상기업집단(동일인이 자연인인 기업집단으로 한정한다)에 속하는 국내 회사는 특수관계인(동일인 및 그 친족으로 한정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 동일인이 단독으로 또는 다른 특수관계인과 합하여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20 이상의 주식을 소유한 국내 계열회사 또는 그 계열회사가 단독으로 발행주식총수의 100분의 50을 초과하는 주식을 소유한 국내 계열회사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통하여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이 경우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의 유형 및 기준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1. ~ 4. (생략)

②, ③ (생략)

④ 특수관계인은 누구에게든지 제1항 또는 제3항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해당 행위에 관여해서는 아니 된다. 

2) 참고로, 이호진을 제외하고 제재처분이 인정된 태광그룹 계열사들도 상고를 제기했으나, 대법원은 사익편취 해당성을 인정한 원심 판결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3)사익편취 심사지침은 2020. 2. 제정됐다. 동 지침은 이미 집행 중이던 사익편취 규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심사기준을 마련하는 취지로 제정됐다. 즉, 공정위예규인 사익편취 심사지침이 기존 법령과 다른 내용을 새롭게 정할 수 없고, 집행 중인 법령을 확인적 차원에서 객관적·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사익편취 심사지침 제정 이전 행위에 대해서도 - 법률 자체가 개정되지 않았다면 - 규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동 지침을 참고할 수 있다.

4)김기유는 시정명령 대상이 되지는 않았으나, 지시 또는 관여자로서 이호진과 함께 고발됐다. 공정위는 김기유가 티시스의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메르뱅도 실질적으로 운영했으며, 2014. 5. 이후 경영기획실장으로서 각 계열사가 구매할 김치․와인을 경영기획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할당한 점 등을 근거로 고발을 의결했다.​ 

5) 박정훈(2001), 협의의 행정벌과 광의의 행정벌, 서울대학교 법학, 제41권 4호, p. 285.

6)박정훈(각주 5), p. 285.

​7)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살펴본다.

8)박정훈(각주 5), p. 287.9)다만, 사업자 또는 사업자단체의 행위에 대해 과징금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이하 ‘과징금고시’)의 세부평가 기준표에 따라 산출한 법위반점수가 1.8점 이상이어야 한다.

<ifsPOST> 

  ​※이 글은 경제개혁연대가 5월 24일 배포한 '경제개혁이슈'를 수록한 것이다.<편집자​>

3
  • 기사입력 2023년05월24일 21시05분
  • 최종수정 2023년05월25일 10시10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