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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9> 미술품 위작 유통, 정부의 대책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5월29일 17시04분
  • 최종수정 2023년06월07일 11시05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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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최근 한 지방미술관의 소장품 중 일부가 감정평가 결과 위작으로 판명돼 작품 구매 경위, 작품수집심의위원회 운영 적정성 및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 한다. 미술관의 소장품들은 철저한 검증 절차를 거쳐 구입되기 때문에 이러한 사안이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미술관의 위작 구입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프랑스의 한 지방 시립미술관에서는 지역주민들의 성금으로 30년 동안 구입한 소장품의 절반 이상이 위작임이 밝혀져 시민들이 큰 충격에 빠졌던 사례도 있다. 

미술관 소장품이 위작일 경우, 그것이 가지는 미술사적 가치와 연구 대상으로서의 의미의 실추로 미술관에 대한 신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게 된다. 하지만 위작의 문제는 구조적으로 늘 잠복해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미술시장에서 발생하는 위작 사건은 미술관의 그것보다 더 다양하고 심각하다. 이러한 일들은 작품가격이 고가인 유명 원로작가나 작고 작가들의 작품에서 주로 발생한다. 이는 작가나 소장자에게 정신적, 재정적 폐해를 끼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시장 교란과 작품의 사료적 가치 평가나 미술사적 연구에 커다란 혼선을 초래한다. 

 

   국내에서 근자에 일어난 몇몇 사례 중 이중섭, 박수근, 천경자 그리고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둘러싼 위작 사건은 그 양태는 다르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술계의 질서를 심각하게 어지럽혔다. 현재 이 사건들은 수면 밑으로 내려간 듯하지만, 그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있고, 유사한 사건의 재발 우려 역시 늘 도사리고 있다. 작품의 진위 여부는 전문 감정기관에 의뢰하여 가리게 되는데, 작품거래 시 일반적으로 전문기관의 감정서가 첨부되어 진품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감정평가 역시 평가위원들의 경험과 안목에 의지하여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완전한 신뢰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 최근 들어 물리적, 화학적 분석을 넘어 AI를 활용, 진품 여부를 판단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2005년 발생했던 이중섭과 박수근 작품의 위작 사건은 12년 만인 2017년 위작으로 밝혀졌는데, 해당 그림 중 몇 개에는 화가들 생전에는 생산되지 않았던 물감이 칠해져 있다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점을 밝혀냈다. 하지만 좀 더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 채 여전히 명확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사례는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사건이다. 1990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에서 선보인 <미인도>에 대해 작가는 본인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미술관과 화랑협회 감정위원들은 세 차례의 감정을 거쳐 진품으로 평가했고, 법원에서도 전문가들의 감정 결과를 종합하여 진품으로 판결하였다. 작가는 자기 작품에 대한 분별력도 가지지 못한 화가로 치부되어 명예에 심한 손상을 입었고, 결국 노 화백은 절필을 선언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지내다 별세하였다. 이후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검찰의 불법 수사로 인한 사자 명예훼손 등 소송을 제기했지만, 현재까지 법원은 이전의 판결을 유지하고 있는 정황이다.

 

  천경자 작가의 사례와 대비되는 것은 2016년 발생한 이우환 작가의 위작 사례이다. 이 경우, 감정 결과는 위작인데 정작 작가는 그것이 자기 작품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위조범들이 검거되고 문제의 작품들을 그들이 위작했다고 밝혔지만, 작가는 자기 작품 중에는 단 한 점도 위작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으로 찾아간 취재진의 인터뷰를 거부하는 석연치 않은 모습으로 관계자들을 실망하게 했다. 이 사건은 위작임을 모르고 작품을 구입한 한 화랑이 그것들을 작가의 전속화랑에 판매했고, 전속화랑은 이 작품에 작가확인서를 첨부하여 고객에게 진품으로 판매하면서 불거진 것인데, 판매된 작품에는 작품의 고유번호가 부여되어 있는데 위작이나 다른 작품에서도 같은 번호가 중복으로 부여된 사례가 다수 발견되기도 하였다. 

 

결과적으로 진품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근거자료는 작가가 화랑에 써준 확인서인 셈인데, 작가는 자기 작품을 수십 년 거래했던 전속화랑을 당연히 믿고 확인서를 써주었다고 하니 얼마나 작품 유통체계가 허술한 것인지 드러난 셈이다. 그의 태도는 화랑과의 복잡한 내부 사정 때문이라 추정되나, 작가는 억지 자존심을 드러낼 게 아니라 국내 최고의 작품가를 유지하는 작가로서 ‘유감이지만, 내 작품에는 얼마든지 위작이 있을 수 있고, 철저히 수사해서 위작 여부를 밝혀주기 바란다.’라고 당당한 입장 표명을 하는 편이 훨씬 대가다운 면모였을 것이다. 이 사건 역시 작가와 작품, 화랑에 대한 신뢰를 동시에 떨어뜨린 결과를 초래한 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현재 국내의 미술품 감정 업무는 1982년 발족한 한국화랑협회의 감정위원회와 2019년 설립된 한국감정연구센터 두 민간 조직에서 맡고 있다. 2002년부터는 한국미술감정평가원(이하 평가원)이 화랑협회와 계약을 맺어 업무를 맡아왔지만 2019년 평가원이 청산되면서 17년간 그곳에서 발행한 감정서 9,000여 건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이중섭 등 대부분의 유명 작가들에 대한 작품 감정서를 평가원이 발행했던 터여서 시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체부는 2017년 말 ‘전담 기구 신설’과 ‘미술품감정연구센터 지정’ 등의 내용이 담긴 「미술품의 유통 및 감정에 관한 법률」 안을 제정하려 하기도 했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하는 미술은행과 정부미술은행을 통합한 ‘한국미술은행(가칭)’을 신설하여 업무를 전담토록 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하려 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내용은 없다. 

여전히 불완전한 공신력을 가진 민간 감정기관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국내 상황은 시장 활성화와 국제화를 표방하는 현실에서 시장의 신뢰성 구축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대책을 마련하는 동안 시장에선 여전히 위작이 거래될 것이고 미술관들마저 위작 구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시장의 폐쇄성과 규제 관련 문제 등 복잡한 요인들과 이해 당사자들의 복잡한 역학관계로 인해 원천적인 문제해결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유통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이라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현재 작품거래나 유통 시 감정평가서나 작가확인서를 발행하지만, 이것 역시 전적인 신뢰가 불가능하다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진위확인과 함께 거래 작품의 정보를 공인된 시스템에 등록하도록 하는 절차를 만들면 어떨까? 

 

현재는 유통 주체가 개별적으로 거래 기록을 관리하지만, 국가 차원의 거래등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블록체인 방식으로 관리하는 방안이다. 명품 판매 시 짝퉁과 구별하기 위해 상품마다 보이지 않는 고유 넘버나 큐알 코드를 장착하여 관리하는 것은 일상화되어 있다. 물론 이 방법 역시 완전치는 않지만, 별도의 진품 감별 시스템 개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위작 감정이 끝난 작품의 경우, 감정서 발급과 함께 거래등록 시스템에 고유하면서도 배타적인 감별방식을 적용하여 등록하는 것이다. 과거의 거래 작품들이야 소급해서 정보화하더라도 신규 거래 작품들에만 이를 적용한다면, 위작 시비가 일었을 때 복잡한 절차 없이 시스템에 검색하여 즉시 위작 여부와 판매작품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스템은 위작의 발생을 근절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필자의 제안은 현재로선 거친 아이디어 차원이지만, 실제로 금융위원회와 같은 기구에서 유가증권이나 블록체인 방식으로 거래되는 예술작품 NFT의 진위 관리를 위해 유사한 시스템 구축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감정평가 관리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오래전부터 정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감정평가 전문기구 신설 등 제도 마련의 빠른 진척을 바라며, 정부와 미술시장의 주체들이 머리를 맞대고 종전의 경험적 감정 방식을 넘어 위작 방지를 위한 다각적인 첨단 시스템을 강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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