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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가 메모한 여의도의 모든 것 <1> "각하의 취임을 경축드립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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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9월07일 16시00분
  • 최종수정 2023년09월02일 17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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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慶祝 第12代 全斗煥 大統領閣下 就任(경축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각하 취임). 정의로운 국가건설에 신명을 바치실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취임을 온 국민과 더불어 미원 임직원은 충심으로 경축하오며 대통령 각하의 국가지도 이념 아래 굳은 신념과 의지로 경제자립과 민주 복지 사회건설에 이바지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味元(미원) 임직원 일동>

 

  전두환 대통령이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한 1981년 3월 3일과 그다음 날 각 신문에는 일제히 기업들의 취임 축하 광고가 실렸다.

 

 <제5공화국의 출범과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취임을 축하하며 …(중략)… 위대한 영도자를 모시고 우리는 풍요로운 민주 복지국가의 건설에 온 정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한국보험공사 사장 김기완. 생명보험협회 회장 이웅기….>

 

<慶祝 第12代 全斗煥 大統領閣下 就任.(경축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각하 취임) 본인의 소박한 소망은 모든 가난한 사람도 의식주에 걱정이 없는 사회…(중략)… 남의 지배나 업신여김을 받지 않는 나라를 이룩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후략)…  (1981.2.10 전 대통령 말씀 중에서-) 삼성>

 

  이것처럼 독재 정권 시절 권력과 기업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개중에는 분명히 자발적으로 ‘각하 만세’를 외친 곳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강압 또는 마지못해, 안 할 수 없으니 했을 것이다. 정권에 찍히면 회사를 뺏기는 것은 물론이고 목숨도 담보할 수 없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40년 전 일이라고 웃어넘겨도 되는 걸까. 윤석열 대통령 취임일인 2022년 5월 10일 아침, 이빨을 닦다가 무심코 신문을 본 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4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합니다. …(중략)… 새로운 대통령과 국민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갈 새로운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 삼성이 함께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더 행복한 내일을 위해 우리금융 그룹도 함께 하겠습니다.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합니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FCA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축하 광고는 그다음 날까지 각 신문을 도배했다.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대통령 취임 축하 광고가 기업 경영에 필요한 행위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왜 2022년 5월, 민간 우주여행까지 열리는 이 시대에 아직도 40년 전 행태가 반복되고 있을까. 그래서 호기심 반, 씁쓸함 반으로 과거 신문을 뒤져봤다. 언제부터 이런 일이 시작됐는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는… 퇴보하고 있었다.

  모든 신문을 다 찾아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축하 광고를 어디 이름도 모르는 작은 신문에 슬쩍 게재할 리는 없을 테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신문 서너 군데에 없다면 그 시절에는 없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찾아볼 수 있는 선에서 가장 처음 등장한 대통령 취임 축하 광고는 제8대 박정희 대통령 취임 때(1972년 12월 27일 자)였다. 그보다 더 오래된 취임 축하 광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 취임과 관련됐지만, 축하라고 부를 수는 도저히 없는 광고가 하나 있기는 했다. 제6대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했던 1967년 7월 1일 자 동아일보 1면에는 취임 기사 아래 ‘박정희 씨에게 보내는 공개장’이란 광고가 실렸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 유진오 대표 이름으로 된 게재된 광고였는데 ‘제6대 대통령의 취임식을 갖는 오늘 본인이 귀하에게 축의를 올리지 못하고 이와 같은 고언을 드리게 된 것을 지극히 불행하게 여기는 바입니다’라고 시작하는 광고였다. 

 

  누구나 예상하듯이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취임 때는 축하 광고가 온 신문을 도배했다. 그런데 김영삼(YS), 김대중(DJ) 대통령 취임 때는 볼 수가 없었다. YS가 취임한 1993년 2월 25일 동아·조선 1면 하단 광고는 탤런트 이순재의 징코민 광고였다. DJ가 취임한 1998년 2월 25일 조선 1면 광고는 ‘오늘의 경제위기를 새로운 국가 발전의 전기로 삼자’는 대한민국헌정회의 당부성 호소문이었는데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에 즈음하여’란 부제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군부독재 시절 기업들의 용비어천가식 축하 광고와는 성격이 달랐다. 아마도 당시가 IMF라는 초유의 국난 상황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물론 같은 날 조선일보에 ‘한 민족 얼을 찾는 우리 옷 연합회’란 곳에서 DJ 취임 축하 광고를 게재했는데 ‘새 대통령과 내각에 우리 것을 아껴 달라는 부탁과 격려로 우리 옷 1벌씩을 선물하고 싶습니다’라는 문구를 보면 취임 축하는 빙자한 홍보 광고가 아닌가 싶다. (이날 동아일보 1면 광고는 남양유업의 ‘대변 고통 불가리스로 해결합시다’였다.) YS·DJ 시절 사라졌던 용비어천가식 대통령 취임 축하 광고가 다시 등장한 것은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취임일(2003년 2월 25일)부터다.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새로운 대한민국이 출발하는 날, 미래를 향한 국민 모두의 희망이 시작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과 참여정부의 출발을 온 국민과 함께 박수를 보냅니다. 함께 가요, 희망으로. 삼성>

 

  10년을 안 하다 보니 발동이 늦게 걸려서일까? 노무현 대통령 때는 이 삼성 광고 외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삼성 광고가 신호탄이 됐는지 2008년 2월 25일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취임 때는 농협, LG, KT, 한화, SK, 대한항공, 그리고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CEO CHAIRMAN’이란 곳조차 신문에 전면 축하 광고를 냈다. 2013년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 농협, STX, 대한항공, 현대자동차, SK,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KT, 현대종합상조주식회사, IBK기업은행 등이 줄줄이 광고를 냈고, 제19대 문재인 대통령 취임일에도 주요 일간지에 농협, KB금융그룹, IBK기업은행, 대한항공, 우리은행 등의 취임 축하 광고가 실렸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일은 앞서 말한 바와 같다. 특이한 것은 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 취임일에 주요 일간지 1면 취임 축하 광고를 독점한 곳이 농협이었는데, 아마도 역대 농협 기관장님들의 과도한 충성심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굉장히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민주화와 인권이 신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지금도 올림픽을 유치하고 치르기 위해 대통령이 재벌 총수를 유치위원장, 조직위원장으로 임명하고 있다. 재벌 총수들이 정말 하고 싶어서 그 자리를 맡았을까? 아직도 대통령이 한마디 하면 대기업 총수가 ‘향후 3년간 4만 명을 직접 채용하겠다’라고 발표를 한다. 이 회사 총수님은 수감, 재수감을 반복하고 2021년 광복절 가석방으로 나왔다. 

  아직도 이런 시대인데, 정권이 대놓고 요구하지 않았다고 감히 대통령 각하 취임 축하 광고를 하지 않는다고? 어느 기업 임원이 “회장님, 이제는 그런 거 하지 맙시다”라고 할 수 있을까. 아래는 앞서 설명한 1967년 7월 1일 자 동아일보 1면에 실린 ‘박정희 씨에게 보내는 공개장’ 내용이다. 50여 년 전 우리에게는 이런 광고도 게재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겠지만 적어도 이런 행동을 엄두는 고사하고 상상도 못 하는 지금과는 달랐다. 

 

 ‘朴正熙 氏(박정희 씨)에게 보내는 公開狀(공개장)’(원문은 이처럼 한문이 대부분이나 편의상 한글로 옮겼다. 지금과는 맞춤법이 다소 다르고 오자가 있지만 원문을 살리기 위해 고치지 않았다.)

 

제6대 대통령의 취임식을 갖는 오늘 본인이 귀하에게 축의를 올리지 못하고 이와 같은 고언을 드리게 된 것을 지극히 불행하게 여기는 바입니다. 이것은 비단 본인뿐만 아니라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드래도 공명선거를 시행하겠다’고 장담했던 귀하의 언명에도 불구하고 사상 유례없는 암흑 무정부적인 6·8부정선거가 귀하의 책임하에 있는 공화당과 행정부에 의해 저질러짐으로써 주권을 강탈당한 많은 국민들이 오늘의 경축에 진심을 우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귀하는 결코 외면할 수가 없을 것이며, 국헌을 뿌리채 유린한 부정선거에 대한 하등의 반성과 척결도 없이 귀하가 오늘 ‘국헌을 준수 운운’하는 것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는 데 대해 본인과 우리 당은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1. 6·8선거는 제2의 ‘구테타’이다(각 항목의 세부 내용까지 소개하는 것은 너무 길어 뺐다. 제목만       봐도 내용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2. 반성과 사과 대신에 보복과 휴학과 최루탄이 될 말이냐

  3. 전면 재선거를 시행하라

 

 결론

 만일 이상의 엄연한 사실과 부정시정의 주장이 귀하에 의하여 자인반성되지 않고, 가진 방법의 탄압과 기만술책으로 6·8 부정선거의 결과를 계속 정당화시키려 한다면 우리와 국민의 항쟁은 전국적으로 계속 전개될 것이며, 금후에 있을 중대 사태의 발생 책임은 오직 귀하가 전적으로 져야 한다는 것을 경고하는 바입니다. 우리의 투쟁은 우리의 당리 추구를 위한 정략이 아니고 국민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숭고한 범국민적 민권투쟁임은 말할 것도 없읍니다. 오늘날 귀하는 변칙적인 ‘쿠데타’의 수단으로 정권을 탈취하고, 6·8 부정선거의 수단으로 계속 정권을 유지하려 하였다는 천추의 오명을 씻기 위하여서도 귀하의 민주정도를 위한 일대 결단이 있기를 촉구하며, 귀하의 오늘의 취임식이 욕된 부정선거의 분장이 되지 않기를 충심으로 비러마지 않는 바입니다.

                                           1967년 7월 1일 신민당 대표위원 유진오  

<ifsPOST> 

 ※ 이 글은 필자가 지난 2023년 8월 펴낸 책 “여의도에는 왜 정신병원이 없을까” <도서출판 북트리 刊>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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