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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28> 글로벌 수준으로 개선되어야 할 뮤지엄 디렉터십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2월19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4년02월18일 09시02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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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국가대표 축구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최근 경질되었다. 금년도 아시안컵 경기의 요르단과의 4강전에서 패배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전략이나 전술의 부재와 팀 선수들의 관리 능력 등이 문제가 되어 축구 애호가들의 거센 항의와 비난을 받은 결과이다. 그는 젊은 시절 독일의 대표적인 선수로 1981년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에서 데뷔해, 슈투트가르트에서 분데스리가 득점왕에 오르는 등 5년간 활약했고 UEFA컵 우승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분데스리가 우승을 차지했고, 국가대표팀 시절엔 1990 이탈리아 월드컵과 유로 1996에서 독일의 우승을 이끄는 등 ‘금발의 폭격기’라는 별명으로 활약하던 세계적인 스타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감독으로서의 경력과 실적에 있어서는 이렇다 할 큰 성과가 없어 미국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되고 처음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을 때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최근 대구미술관의 관장으로 학예직이나 미술관장으로서의 경력이 전혀 없는 시장의 고교 동창인 한 작가가 임명되었다. 이에 대해 지역미술인들이 반대 성명을 내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시장의 친구라고 관장이 되지 말란 법은 없지만, 미술관 조직문화의 경험이 전무한 비전문가에게 광역시 미술관 관장의 중책을 맡기는 일은 매우 비상식적인 일이다. 그는 관장이 되기 전, 계획에 없었던 미술관 개인전에 초대되었는데, 뜬금없이 자신이 그린 시장의 초상화를 전시 중인 작품과 교체하여 전시하는 등 미술관 전시의 메커니즘도 모르는 아마추어라고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임명권자인 시장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관장으로 임명하는 게 뭐가 문제냐며 반문했다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축구대표팀의 감독이나 미술관장직은 단순히 축구를 잘한다거나 그림을 잘 그린다고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사권자와 개인적 친분으로 임명되는 자리는 더더욱 아니다. 이 디렉터라는 자리는 조직 전체를 책임 있게 창의적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은 물론, 경영 능력을 갖춘 전문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감독이나 관장은 아무나 해도 무방하며, 선수들이나 학예사들이 실무적인 일을 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당 분야의 전체적인 생태계를 잘 파악하면서, 차별화된 전략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조직을 이끌어 가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들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능력이어야 한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치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고, 디렉터의 역량에 따라 그 조직의 명운이 달라지는 것을 고려할 때, 디렉터의 선정과 임명은 인사권자의 취향이나 친분에 의해 결정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형식적인 공모 절차를 거치지만 인사권자가 가진 피상적인 정보나 인지도 등을 바탕으로 이를 결정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어서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많은 지자체장은 뮤지엄의 디렉터를 자신의 지인들에게 수혜를 베푸는 자리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일반화되어 있다. 대구광역시의 사태는 이러한 인식의 발로이며 인사권자의 뮤지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국립 뮤지엄의 경우 역시 공모를 거치지만 현장과는 괴리된 채 매번 정치적 입김으로 결정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어 대구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디렉터십이란 디렉터가 가진 능력이나 그 능력을 구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뮤지엄의 디렉터십은 유형에 따라 학자형, 관료형, 경영자형, 종합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학자형은 전통적인 유형으로 예술문화 분야의 식견이 높은 학자나 연구자를 디렉터로 임명하는 경우이며, 관료형은 글자 그대로 정부의 행정관료를 임명하는 경우이다. 경영자형은 1980년대 이후 비영리 공공기관에도 경영마인드를 도입하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적 흐름에서 비롯된 경우로 예술전문가가 아닌 경영자를 디렉터로 임명하는 경우이며, 마지막 종합형은 앞의 세 유형을 종합한 능력을 갖춘 인사를 디렉터로 임명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도 학자형이 도입되기 전엔 관료형으로 운영되던 시기가 있었고, 근자엔 기업의 CEO 출신을 디렉터로 임명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상적인 뮤지엄 디렉터는 종합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인 예술문화 영역의 분야별 현장 전문성을 기반으로 경영 능력을 겸비한 인물이 가장 적합하다 할 수 있다. 뮤지엄의 디렉터십의 자격으로 요구되는 내용들은 우선 뮤지엄 해당 분야의 전문적 지식이다. 그리고 창의성과 혁신성, 조직 운영 능력, 의사소통 능력, 문화적 이해와 다양성, 교육 및 열정 등을 들 수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뮤지엄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디렉터들은 모두 이러한 역량들을 고루 갖춘 인물들이다. 뉴욕 MOMA의 초대 관장이던 알프레드 바(Alfred Hamilton Barr Jr.) ,뉴욕 구겐하임의 토머스 크렌스(Thomas Krens), 테이트 모던의 니콜라스 세로타(Sir Nicholas Serota), 루브르의 미셸 라클로트(Michel Laclotte) 등등은 그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들은 전문성은 물론 현장 생태계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새로운 비전을 통해 자신들의 뮤지엄을 혁신시키며 끊임없이 시대의 흐름을 선도해 나갔다. 물론, 뮤지엄의 기능과 역할이 빠르게 변모하기 때문에 뮤지엄 디렉터십 역시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변화한다.

 

  과거와 달리 근자에 들어 한국의 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어 국내 뮤지엄의 위상과 역량이 향상되고 혁신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묵은 과제가 되었다. K-문화에 관한 관심으로 최근 해외 뮤지엄에 우리 전시콘텐츠가 자주 선보이게 되었고, 교류 확대를 요청해오는 뮤지엄 수도 늘고 있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여전히 80년대식 구태의 낙후된 뮤지엄 문화로는 교류나 경쟁을 펼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이나 소장품의 확충, 경쟁력 있는 전시콘텐츠의 생산 등의 각론이 필요할 텐데 이러한 각론들을 효율적으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온전한 디렉터십의 구축이 급선무다. 국제적 동향과 국내 문화 생태계에 정통한 전문성을 갖춘 디렉터들의 임명이 절실한 이유이다. 역량 있는 디렉터 한 사람이 가지는 파급력과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 수준의 뮤지엄 디렉터십이 필요하다. 경제 강국이란 우리가 문화적으로는 왜 이리도 행보가 지진한 것일까? 방법이 빤한데 여전히 행정 논리에 매몰되어 있다. 뮤지엄 디렉터에 대한 형식적인 공모제도와 짧은 임기제도를 탈피하여 역량 있는 디렉터가 안정적으로 온 힘을 기울여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적 입김이나 인사권자의 개인적 취향이나 친분과 같은 비본질적 요소가 개입될 수 없도록 뮤지엄 분야의 현장 전문가들에 의해 관리되고 운영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장에 답이 있는데 낙후된 정책과 탁상행정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전문성과 혁신성을 가진 뮤지엄 디렉터십은 국가 문화의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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