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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기자의 유쾌한 명상 체험기 쉐우민 이야기, 서른여덟 번째 이야기 사야도 명답 베스트 5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03월17일 17시11분
  • 최종수정 2018년03월17일 17시11분

작성자

  • 김용관
  • 동양대학교 교수(철학박사), 전 KBS 해설위원장

메타정보

  • 39

본문

 

  5위 

  인터뷰 시간은 솔직히 말하면 지루하다. 뻔한 질문이 많아서다. 뻔한 질문의 유형은 대략 두 가지이다. 질문자가 체험하지 않고 책에서 봤거나 남에게 들은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와,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질문하는 경우가 그 하나다. 이런 질문은 사야도 뿐 아니라 같은 자리에 있는 동료수행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십상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일상을 고주알미주알, 세월아 네월아, 얘기하면서 질문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통역하는 청현스님일 게다. 하지만 청현스님은 그런 질문조차도 하나하나 성실하게 통역한다. 요기들 모두 그런 청현스님을 존경해 마지않는다. 

  이런 해프닝도 있었다. 질문하는 사람의 고주알 미주알을 통역하다가 막힌 청현스님이 물었다. “그리고 좀 전에 뭐라 했지요?” 질문자가 자신이 뭐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하는 바람에 대중 모두가 웃었다. 질문이 하도 지리멸렬해서 대중 누구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뻔한 질문에 대한 사야도의 답변은 의외로 들을 것이 많다. ‘지혜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들으면서 갖게 된다. 사야도 인터뷰는 우문현답 퍼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사야도의 답변에는 늘 자신의 수행체험이 녹아있다.

  어느 날 어느 수행자가 질문했다. 매우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질문이었다. 사성제, 삼법인, 37조도품, 오력, 오개 등 교학의 개념들이 현란하게 등장했다. 이에 대한 사야도 답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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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다 있다”였다.

 

  4위

  수행처에서 수행하는 수행자들은 이따금 평소에 하지 않던 체험을 하게 된다. 몇날며칠을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좌선하고 경행만 하니 이런 체험이 오게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수행자들이 겪었다고 얘기하는 체험들은 다양하다. 유형별로 몇 가지 보면, 우선 갑자기 몸의 일부 또는 전부가 없어졌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좌선 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는데 보통 사마디(삼매)의 힘이 강해지면 그런 체험을 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와 유사하게 몸이 우윳빛이 된다거나 몸에서 빛이 나온다든가 눈앞에 빛이 보인다는 체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달리보이는 체험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 들리는 소리나 보이는 모양이 섬세하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간이 넓어지거나 물체의 움직임이 슬로우비디오처럼 보인다는 체험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찰나의 시간 속 광경이 정지해 지속하는 체험을 얘기하기도 한다.

  이런 체험들을 한 수행자들은 자신이 뭔가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들뜨게 마련이다. 하지만 스승들은 이런 체험들은 그저 체험일 뿐이라며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사야도 인터뷰 시간에도 이런 체험을 얘기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사야도는 귀 기울여 듣지 않는듯하다. 그저 사마디가 커지면 그럴 수도 있다는 정도로 답변하고 만다. 

  사야도는 체험보다는 알아차림을 강조한다. 체험이 사마디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수행의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체험을 얻기 위해 하는 수행이라면 뭔가 잘못되었다. 수행은 오로지 원인만 지을 뿐 결과에 대해서는 어찌해볼 수 없다.

  어느 수행자가 보고했다. ‘공간에 앎이 가득 차 있다’고. 수행자는 그 체험을 수행 진전의 징표로 인정받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사야도의 답변은 단순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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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됐다. 있는 그대로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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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위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경행보다는 좌선에서 정신의 집중도가 높아진다. 앉아있다 보면 일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좌선이 잘 될 때가 있다. 어떤 여성 수행자가 인터뷰에서 보고했다. 

  “아침부터 좌선이 잘 됐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점심 먹을 시간이 됐는데,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점심을 굶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듯 절 집안에서 밥 때를 놓치면 그만이다. 다음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식사시간에 늦은 사람을 위해 인정스레 밥을 차려주는 건 세간의 풍속이지 절 집안 풍속은 아니다. 때가 지나면 국물도 없다. 쉐우민에서도 마찬가지다. 밥 때가 지나서 식당을 어슬렁거려도 먹을 건 그림자도 없다.

  더구나 미얀마는 오후불식의 계를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점심식사를 못하면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려야 한다. 점심을 놓치면 마음까지 허전하다. 그 수행자, 얼마나 배가 고프고 허전했을까... 수행자의 보고를 들은 사야도가 이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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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왜 굶느냐? 앉아서 되는 수행이 왜 서서는 안 되고 왜 걸으면서는 안 되고,

왜 밥을 먹으면서는 안 되느냐. 굶지 말고 먹으면서 수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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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야도의 이 답변은 쉐우민 수행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야도는 늘 강조한다. “이곳(쉐우민)에 와서 수행하는 것은 수행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함이지 뭔가를 얻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수행은 돌아가 일상에서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수행할 수 있어야 비로소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수행자들은 자신의 수행상태를 보고할 때, 좌선, 경행, 일상을 구분하여 보고하는 게 보통이다. 이를테면 “좌선 시에는 이러합니다. 경행 시에는 이렇게 수행합니다. 일상에서는 이런 부분이 어렵습니다.” 등등... 이렇게 일상에서의 수행을 강조하는 부분이 여타 수행처와 구별되는 쉐우민 수행법의 특징이라고 수행자들은 이해하고 있다.

 

  2위

  이 이야기는 K거사의 경험담이며, 인터뷰에서 본인이 목격한 사건은 아니다. K거사가 사야도와의 첫 만남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해들은 내용이다. 그 첫 만남은 10년 전의 일이다. 세상 이곳저곳을 방랑 수행하던 K거사는 쉐우민에 오기 전 고앵까를 수행했다고 한다.   고앵까 수행은 예나 지금이나 주로 10일 집중수행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고앵까 집중수행에 들어가면 첫 3일은 아나빠나 호흡 명상을 한다. 아나빠나 사띠는 들숨날숨을 관찰하는 명상법이다. 나흘째부터는 바디스캔을 하는데, 머리의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순서대로 관찰한다. 마치 정형외과에서 MRI를 찍듯 스캔하는 형식이다. 그러면서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 곳, 이른바 ‘맹지’가 없도록 몸 전체를 스캔해 간다.

  K거사는 이런 10일 집중수행을 무려 17번이나 마쳤다. 하지만 그러다 병통이 생겼는데, 자연스러운 호흡이 되지 않아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런 뒤 인연이 되어 쉐우민에서 와서 떼자니아 사야도와 만났다. 그 만남의 자리에서 K거사는 자신의 수행이력을 말하고 자연스러운 호흡이 되지 않는 병통이 생겼다며 가르침을 구했다.

  사야도는 어떻게 답변했을까? 사야도의 답변은 이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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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럼 그거 하지마!”

 

  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산길을 가다가 낭떠러지를 만나거나 급류가 흐르는 개천을 만난다면 목숨을 걸고 바위를 기어오르거나 급류를 건너야 하는 건 아닐 터. 다른 길을 찾는 게 현명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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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위

  쉐우민 센터에서 사야도 인터뷰는 집단으로 진행된다. 다른 센터에서는 1대1로 진행되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쉐우민에서 1대1 인터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집단 인터뷰를 진행해도 사야도는 거의 하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

  인터뷰를 집단으로 진행하다 보니 이 분위기가 익숙지 않은 수행자에게 인터뷰는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다. 수십 명이 자신의 인터뷰 내용을 듣는다고 생각하면 께름칙하게 느낄 수도 있다. 수행자들에게 인터뷰는 그래서 용기를 내야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이가 퍽 지긋한 한 수행자가 있었다. 잘 해보겠다는 마음에 얼마 전 쉐우민에서 계를 받고 출가한 비구였다. 지긋한 나이에 매일 아침 맨발로 탁발을 돌았다. 테라바다 가사를 걸친 모습이 어딘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기도 했다.

  이 분이 인터뷰 시간에 용기를 내어 자신의 수행을 이렇게 보고했다. “불교와 인연이 맺은 지는 퍽 오래되었다. 경전도 보고 관련된 책도 많이 봤다. 하지만 좌선수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곳에 와서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좌선을 한다고 앉아있다 보니 괴롭다. 특히 느닷없이 몸 여기저기가 가려워서 고통스럽다.”

  물음에 대한 사야도의 답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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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가려우면 긁어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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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3월17일 17시11분
  • 최종수정 2018년03월17일 17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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