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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무의 행복한 로마읽기]<34> 예수의 탄생과 십자가 처형(기원전 4~서기 30)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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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6월07일 17시30분

작성자

  • 양병무
  • 인천재능대학교 회계경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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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기원전 4년, 예수가 시리아 속주 유대에서 탄생했다. 예수의 탄생과 기독교의 등장은 로마 역사와 세계 역사에 중요한 사건이 된다. 인류 역사는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BC)과 서기(AD)로 갈리기 때문이다. BC는 영어로 그리스도 이전을 뜻하는 ‘Before Christ’의 약칭으로, 그리스도의 탄생 이전과 이후를 시대 구분의 기준으로 삼는다. AD(Anno Domini)는 라틴어로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으로, 기원후를 의미한다.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기독교의 전파는 로마의 역사에서 극심한 탄압을 받지만, 로마제국 후반기에는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로까지 인정받는다. 예수의 탄생을 『신약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예수 탄생은 기원전 4년이니까 아우구스투스 시대에 태어났다. 『신약성경』에 예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갈릴리 나사렛으로 호적하러 갈 때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이 나온다.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예수는 처형당하기 전 3년 동안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복음을 가르쳤다.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은 『신약성경』의 4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는 12명의 제자를 선택하여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며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나병 환자의 병을 고치고,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 복음서의 3분의 1 정도가 예수가 행한 기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예수의 가르침은 예루살렘의 많은 사람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았으며,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메시아’의 출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당시의 정치 지도자인 사두개파와 종교 지도자인 바리새파의 반발을 사 하나님의 아들을 사칭했다는 신성 모독죄로 서기 30년에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 처형당한다. 

 

당시에 십자가형은 정치적 선동가, 해적, 노예 등 사형에 처할 중죄인을 다스릴 때 주로 사용되었다. 사형수는 대개 매질을 당한 다음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처형장으로 끌려가 매달려 죽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는 과정은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Passion of Christ)〉에 잘 나타나 있다. 

 

십자가 사건은 2대 황제 티베리우스가 제위에 있을 때에 일어났다. 예수가 체포되어 처형될 때 빌라도는 유대 속주를 관장하는 로마제국의 총독이었다. 빌라도는 처음에 예수의 사건 전체를 자신과 무관한 ‘유대인의 문제’이고 종교적 사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예수가 로마에 정치적 위협이 된다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되려 한다는 유대인들의 고발이 없었다면 그를 석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강하게 요청하자,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선고했다. 처형된 예수의 시체는 바위 안의 묘에 매장되었는데, 죽은 지 3일 만에 본인의 예언대로 부활하여 제자들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40일 뒤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천했다.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사랑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이 땅에 내려온 이유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함이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이유 역시 인간의 사랑의 실천이다. 그래서 예수는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4복음서는 예수의 탄생, 십자가, 부활, 재림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기독교는 사도 바울의 등장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바울은 독실한 유대교 신자이며 로마 시민권자로서 기독교를 탄압하는 선봉에 섰던 인물이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위해 대제사장의 권한을 받아 다마스쿠스(Damascus)로 가던 중 예수의 나타남을 보고 그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이후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이렇게 기독교의 박해자에서 돌아선 바울은 기독교를 이스라엘 밖으로 전파하기 시작하여 로마까지 전파하게 되었다. 바울은 『신약성경』 27편 중에서 13편의 편지를 써 『신약성경』을 완성하는 역할을 했다. 토머스 R. 마틴은 『고대 로마사』에서 바울이 기독교의 세계화에 기여한 점을 이렇게 평가했다. 

 

“바울은 윤리적 행동, 특히 성적 부도덕을 피하고 그리스·로마 신들을 예배하지 말라고 가르쳤으나, 유대인 율법의 모든 조문을 따라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가르쳤다. 기독교를 유대인 공동체 밖으로 전파하려 했던 그는 시리아, 소아시아, 그리스의 비유대인들을 겨냥하여 전도 사업을 펼쳤다. 그는 이교도들의 개종을 한결 수월하게 하기 위해, 이 종교에 들어온 남자들은 유대교의 성인식인 할례 의식을 치를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바울이 제국의 동부에 있는 여러 속주에 나타나서 논쟁과 소란을 일으키자, 로마 당국은 소요를 일으키는 범죄자로 보고 체포하여 기원후 65년경에 처형했다.

사도행전은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와 바울 등 사도들이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믿음을 널리 전파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사도들은 처음에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에게 전도를 시작했으나, 이내 로마제국 전역의 비유대인들에게 신앙을 확산시켰다. 

이렇게 해서 기독교가 탄생했다. 그 출발은 미미했으나 서기 64년 대화재 사건 때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탄압하면서 로마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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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6월07일 17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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