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소통과 소신 사이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6월05일 14시3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37분

작성자

  • 나은영
  •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학장

메타정보

  • 37

본문

소통과 소신 사이

 

 소통을 할 것인가, 소신을 지킬 것인가. 크든 작든 어떤 조직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소통도 하고 소신도 지키면 금상첨화라 하겠으나,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 소통을 하려면 소신을 버려야 하는가

소통을 하려면 소신을 버려야 할까? 그렇지 않다. 소통의 첫 걸음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흔히 ‘소통의 달인’이라 하면 자신의 말을 잘 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진짜 소통의 달인은 잘 ‘듣는’ 사람이다. 겉으로만 듣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며 경청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과정에서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굳이 버려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최종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소신의 수정이나 양보가 필요할 수 있지만, 본인의 소신은 꿋꿋하게 간직한 채로 다른 사람의 소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가 최선을 다해 살아 온 만큼 상대방도 최선을 다해 살아 왔음을 인정한다면, 상대방과 소통하기가 훨씬 더 쉬워진다. 내가 굳게 믿는 것이 있는 만큼 상대방도 굳게 믿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서로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러한 소신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소신의 일부를 양보할 때 서로에게 어떤 결과가 돌아올 수 있을지, 쌍방이 모두 빗장을 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굳이 어느 한 쪽의 소신을 버리지 않고서도 둘 모두 승리하는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다.

 

20156514432326015s7jms.png
 

□ 소신을 지키려면 소통을 피해야 하는가

소신을 지키려면 소통을 피하는 것이 최선일까? 그렇지 않다. 마틴 루터 킹은 자신의 소신, 자신이 믿는 것을 대중과 나누고 소통함으로써 소신을 지켜 나갔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 나갔다.

소신을 지키기 위해 소통을 피하는 것은 부작용을 낳는다. 소통을 피함으로써 소신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기회를 놓치게 될 뿐만 아니라, 변화해 가는 현실 속에서 지금껏 지켜 온 소신의 구성요소들 가운데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파악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소신이라 하더라도 모든 시대, 모든 지역, 모든 사람들에게 관통하는 만고불변의 진리는 있을 수 없다.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은 이 시대, 이 지역, 그리고 나의 경험에 비추어 진리일 뿐이다. 나의 소신이 중요한 만큼 다른 사람의 소신도 중요할 수 있다고 믿는 겸손함과 관용이 있다면, 굳이 지금 이 순간 나의 소신만을 지키기 위해 소통을 꺼려할 필요가 없다.

소신을 지키기 위해 소통을 피하는 것은 갈등의 문제점을 그대로 둔 채 갈등의 현장을 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신과 소신이 충돌하는 갈등은 서로 중요한 사이일 때 발생한다. 중요하지 않은 상대방과는 부딪칠 일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소통을 회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소신을 피력하며 설득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20156514433759348z0rua.png
 

□ 소통을 ‘잘’ 하면 소신을 지킬 수 있다

소통을 잘 하는 것은 서로 의미를 공유하는 부분을 넓히는 것이다. 따라서 소통을 ‘잘’ 하고 나면 서로가 믿는 것들 중 상당한 부분을 공유하게 된다.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고 상대방을 믿어야 한다. 예전에 나를 속인 적이 있는 상대라 하더라도 ‘한 번쯤 더 속는 셈치고 믿어보자’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그 상대와는 영원히 소통할 수 없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말의 내용과 형식이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말의 내용은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이야기하되, 그 형식은 ‘부드럽게’ 하여 상대가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정작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은 이야기하지 못하고 빙빙 돌려 주변만 건드리면서 그 형식은 상대가 위협을 느낄 정도로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낸다면, 상대와 의미를 공유하게 되는 부분은 거의 없고 서로 감정만 상하게 된다. 그러면 본인의 소신을 지킬 수 있는 길도 더욱 멀어진다.

소신을 지키려면 그 소신을 상대에게, 그리고 대중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 내 소신을 따르라 하기보다는 왜 따라야 하는지, 그 소신을 따를 때 어떤 점이 이로운지를 마음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주변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고 느끼고 또 행동하는 존재다. 소통을 포기하는 것은 곧 사람들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소신들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당연하며, 분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소신들을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서로의 소신을 최대한 지키는 길이다.  

37
  • 기사입력 2015년06월05일 14시38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09시37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