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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5년06월22일 22시5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2시27분

작성자

  • 김진해
  • 경성대학교 예술종합대학장

메타정보

  • 42

본문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오래 전 읽은 어느 시인의 산문집 제목이다. 왜 문득 영혼이 생각이 날까? 요즘 들어 점점 살기가 각박해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일까? 이유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다. 머리 한 곳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가끔씩 엄습한다. 마음 한 구석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자리한다. 걱정과 더불어 막연한 공포심이 밀려드는 것 같다. 왜일까? 하루가 다르게 터지는 사건 사고를 접하면 무감각 해질 법도 한데 이를 지켜보고 있는 나의 일상은 점점 더 불안해진다. 

 

신문지상을 도배하는 메르스 관련 기사를 보며 많은 이들이 막연한 공포에 휩싸인다. 혹 나는 괜찮을까? 가족들은 괜찮을까? 떨어져 지내는 가족, 친지들에게 문자와 카톡을 통해 의사 친구가 보내준 예방법과 병원 정보 등을 공유한다. 사람들은 평소보다 더 자주 손을 씻고 마스크를 착용한다. 대중이 운집하는 영화관, 마트 등 공공장소에 잘 가지 않는다. 평소에 이용하던 지하철이나 노선버스 대신 자가용을 몰고 나간다. 언론 매체나 보건소에서 알려주는 이런 저런 공중위생 준수요강을 열심히 따라 하고 있지만 다들 불안해한다.

 

메르스 공포는 이미 확산되었다. 방송에서 메르스 예방법이 수시로 흘러나오고 정부는 별 것 아니다 개인위생에 더 조심하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하면 되니 큰 걱정 말라고 한다. 그러나 보도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은 환자 증세 악화, 4차 감염자 발생, 사망 몇 명, 전국으로 확산 추세 등 불안한 소식들뿐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대통령의 방미도 취소되었다. 이 정도면 우리 국민의 불안감을 국가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다. 사소한 감기 정도로 생각했던 메르스가 무차별 확산되고 SNS의 내용 중 유언비어를 포함한 여러 사실들이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다. 일정 부분 사실로 확인되고 확진자가 계속 증가하니 두려울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심리적 불안과 함께 정치사회적 갈등으로 사회 곳곳이 불안하다. 여야는 공무원 연금법안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웠다. 그러나 내놓은 합의안이라는 것이 6년 후면 다시 원점 회귀하는 절름발이 개정안이라고 비난이 크다. 국회법 개정안을 둘러싸고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야권은 내분으로 연일 헤게모니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하여 1.5%대 초저금리 시대를 맞이했다. 더불어 주택담보대출의 증가로 가계 빚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메르스는 또 다시 공연, 문화계와 관광, 호텔, 음식, 숙박, 유통 등 서비스 업계를 중심으로 경제를 불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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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서민층은 부동산 시장의 주택청약 열기를 허탈하게 바라본다. 그들은 집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거나 엄두를 낸다 해도 이자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을 능력은 더욱이 없다. 전세값 폭등에 내 집을 마련하려고 나선 이들이 당장은 초저금리 덕에 집을 쉽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경기 변화로 금리 인상이 일어난다면 가계 부채가 뇌관의 핵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우리 산업은 전반에 걸쳐 구조적 취약성으로 국제 경쟁력에서 밀린다 한다. 환율전쟁으로 원화 절상에 따른 조선과 자동차 수출 등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단다. 

 

공무원들은 연금협상에 오히려 덕을 보았다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개혁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20년 이상 근무해야 연금 수령이 가능한 것이 10년 이상 근무면 수령이 가능해지는 등 전반적으로 연금 협상 후 오히려 좋아졌다는 것이다. 일부 공무원들의 불만이야 있겠지만 퇴직 후 생활에 타격을 줄 정도의 개혁안은 아니라고 한다. 하나마나 한 공무원 연금개혁안을 두고 내년 총선을 앞두고 벌인 국민 기만용 정치 쇼에 불과하다고 말이 많다. 이를 지켜보는 서민들은 샘이 나고 배가 아프다. 국민연금 보장이나 혜택도 없고 생계가 막막한 저소득 소외계층의 고심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서민층은 서민층대로, 상인은 상인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사무직과 공장 노동자들은 그들대로, 노약자와 장애자들은 원래가 불안했다. 우리 사회 6백만 명에 달한다는 비정규직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극도에 달해 있다. 이제는 말 그대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연명한다고 봐야한다. 삶의 고통이 점점 무겁게 다가온다. 행복이라는 말의 달콤함에 도취되어 국민행복을 공약으로 내 건 정권에 표를 던졌다. 그들이 국가를 이끌면 행복해 질 거라는 기대도 반 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수치상으로도 현 정부의 국민행복지수는 과거 정권보다도 하락했다. 

 

국민 모두는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우리 국민은 납세와 국방의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할 권리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우리 삶이 편안해질 권리가 있다. 의무만 있고 권리가 없는 사회는 부당하다. 명령만 있고 항변의 기회가 없는 사회는 답답하다. 일방적인 주입만 있고 생각의 교환이 없는 교육도 바람직하지 않다. 부의 배분이 편중된 사회도 부당하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는 사회도 지향점이 아니다. 불로소득으로 배부른 자가 양산되는 사회구조는 옳지 않다. 인권과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사회 역시 민주사회가 아니다. 기득권이 한없이 연장되고 신분상승이 원천 봉쇄되는 사회라면 개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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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옳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역사는 항상 진보하지 않는다는 역사학자의 말을 실감한다. 이유 없이 머리가 아픈 이유, 알 수 없이 가슴이 답답한 이유, 괜하게 신경질이 나는 이유, 신문을 볼 때 마다 열 받는 이유, 국회의원들이 정략에 따라 벌이는 이전투구에 화나는 이유, 공익집단이 이기적 투쟁을 할 때 싫은 이유, 집단 이기주의에 빠진 각종 단체들의 과한 행동에 부아가 치미는 이유, 인사청문회에서 뻔뻔하게 거짓말하는 고위 공직자 후보들을 볼 때 실망하는 이유, 내가 속한 조직과 집단이 신명 대신 스트레스를 팍팍 줄 때 맥 빠지고 삶이 싫어진다. 진정 삶이 즐겁고 행복할 수는 없을까?

 

토요일 느긋하게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아침과 점심 중간 즈음 행복한 식사를 식구들과 함께 하고, 친구들과의 약속에 맞춰 산으로 향한다. 하산 후에 순두부에 약주 한 잔 걸치고 귀가한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약간의 땀을 흘리며 다리의 근육을 키운다. 심호흡으로 몸의 활력을 찾고 벗들과 세상의 희노애락을 담소한다. 간혹 산에서 라디오를 크게 틀고 산행하는 몰지각한 이들은 만나면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산행은 즐겁다. 혹은 낚시라도 좋고 드라이브라도 좋고 하이킹, 영화감상, 야구장 가기, 미술관 관람 등 무엇이든 좋다. 기분이 좋을 수만 있다면..

 

일상의 소박한 즐거움이 삶의 기쁨이요 살아가는 재미가 아닌가. 그런데 세월호 사건 이후 줄 곳 마음의 여유가 상실되고 메르스로 다시 심신이 광풍을 맞는다. 세월호 당시 우리 국민은 희생자와 그들 가족의 슬픔에 함께 슬퍼하고 애도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최악의 사태를 맞은 데 대한 사회 전체의 시스템의 문제와 부조리에 공분했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는 나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개개인 모두가 더 불안하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조금만 주의하면 된다고 곧 진정될 것이라고 아무리 홍보에도 국민 개개인의 불안은 증폭되어 통제 불능의 상황으로 가는 것 같다.

 

큰 사고와 재난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대처 능력에 의문을 품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월호 사태가 전 국민의 ‘공분(公憤)의 대상’이었다면 메르스는 우리 모두를 불안에 몰아넣는 ‘공포(恐怖)의 대상’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잘 처리될 수 있었던 일들이 크게 터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갈 일들 때문에 우리는 불안에 시달린다. ‘불안의 시대’다. 나의 문제와 사회적 문제가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아가 말하는 ‘실존적 고독’ 이야말로 생각의 사치다. 그러나 이 시간 ‘존재적 고독’이 엄습한다. 모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불행한 존재지만 그러기에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태어난 축복의 존재가 아닌가?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독수리의 눈이 되어 나와 사회와 국가의 존립(存立)을 살펴보자. 높이 날아올라 나의 존재 이유를 물어보자.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날아보자.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훨훨 날아 올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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