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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X 파탄으로 암호화폐 시장 대혼란, 정부는 비상한 대응에 나서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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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12월19일 1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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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1일 세계 2위라고 알려진 암호화폐 거래소 FTX Trading(이하 ‘FTX’)이 미 연방파산법 11조에 따른 기업회생절차(‘Chapter 11’)를 신청한지 1개월여가 지난 지금도 전세계 암호화폐 시장은 아직 충격에 휩싸여 있고 진통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시장의 신뢰는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번 FTX 파탄의 배경에는 암호화폐 비지니스 모델의 취약성, 시장의 투명성 결여, 허술한 기업지배구조, 당국의 규제 방치 등, 총체적 위험 요인들이 작용한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FTX 창업자 Sam Bankman-Fried(이하 ‘SBF’)의 뒤를 이어 취임한 레이(John Ray) CEO는 법원에 제출한 ‘Chapter 11’ 신청서에서 “FTX 사태는 과거 Enron 사태보다 심각하고, 50년 경험에서 겪은 최악의 상황”이라며 한탄했다.

 

한편, 창업자 SBF는 본거지인 바하마에서 FTX의 기업지배구조 및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며 사죄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개인 투자회사 Alameda의 재무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자신은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며 파탄 책임을 당시 경영층에 돌렸다. 그는 이미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미 연방검찰청 뉴욕남부지청에 의해 8개 항목의 사기(fraud) 혐의로 기소됨과 동시에 바하마 경찰에 구속됐다. WSJ는 FTX 파탄은 전례 없이 위중한 사태이며, FTX 고객들의 예치금 회수가 불투명하다고 우려했다. CNN 방송은 SBF가 조만간 미 법원 재판에 회부될 예정이고,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최장 115년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영국 Financial Times는 SBF가 FTX 거래소를 자기 개인 영지(領地)처럼 허술하게 운영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FTX 사태를 계기로, 미 의회를 비롯한 각국 금융 감독 책임자들 사이에는 지금이야 말로 암호화폐 시장 전반을 일제 정비할 시기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아래에, 암호화폐 업계 최고의 성공 사례로 부러움을 샀던 FTX 창업자 SBF가 ‘시대의 총아(寵兒)’에서 하루 아침에 ‘파멸적 악동(惡童)’으로 전락한 드라마의 배면, 그리고 이번 사태로 재연되고 있는 암호화폐의 본질 논쟁 등, 주요 논점들을 해외 언론 보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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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TX 파탄으로 드러나는 암호화폐 기업의 ‘복마전(伏魔殿)’ 실태” 


FTX는 ‘암호화폐의 얼굴’로 명성이 높던 창업자 Sam Bankman-Fried(‘SBF’, 30세)가 2019년 홍콩에서 설립한 뒤, 조세회피지역인 바하마로 이전한 암호화폐 거래소다. 여기에 실리콘 밸리 및 월가 투자자들이 대거 투자했다. 그 중에는 세계 최대 헤지 펀드 BlackRock, 벤처투자사 Sequoia Capital, 캐나다 온타리오州 교직원연금기금, 싱가포르 공적 투자기구 Temasek, 日 Softbank, 한국 삼성전자 VC 부문도 포함됐다. FTX가 자금 조달에 순풍을 맞은 것은 2021년 여름으로, 불과 7개월 동안에 70개 이상 투자자들로부터 19억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투자 자금을 확보했다. 

FTX가 이렇게 단숨에 거액의 자금을 모집할 수 있었던 것은 자사가 발행한 암호화폐 ‘FTT’를 기반으로 한 ‘Staking Service’라는 일종의 파생상품을 통해 타사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8%)을 내걸고 예치금을 모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뒤에, 각국이 경쟁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고 시장 자금이 경색되자 주력기업 FTX 자금 사정이 급격히 악화됐고 SBF는 FTX 고객 예금을 부당하게 유용해서 자신의 개인 투자회사 Alameda에 융자했다. 이후에도 자금 사정이 계속 악화되자 거래 관계가 있던 Binance에 기업 매수를 타진했으나, FTX 자산 실사 뒤 거절당했다. 

 

FTX 파탄 직후 취임한 레이 CEO는 “‘Chapter 11’ 신청이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최대한 환원하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2001년 미국 역사상 최대의 경영 파탄 사례였던 에너지 그룹 엔론(Enron)의 회계조작 사태를 수습한 장본인이다. 그는 경영권을 인수한 뒤 FTX의 경영 실태에 대해 ‘자신이 일생 경험한 최악’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SBF는 거액의 자금을 유출한 것으로 드러나 있고, 가장 심각한 사례는 거래소 고객들의 예치금을 포함해서 약 100억달러의 자금을 자신의 개인 투자회사 ‘Alameda’에 융자 형태로 빼돌렸다.

그 외에도, 회사 자금으로 직원 개인 용도의 주택을 구입하는 등, 회사 자금을 부정하게 유용한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기업 의사결정 관련 증빙을 전혀 보존하지 않은 것은 물론, 직원 명단조차 구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이번 FTX 경영 파탄은 이전부터 불투명한 경영으로 많은 의혹을 받아오던 암호화폐 기업의 ‘총체적 부실, 총체적 파탄’의 전형으로 보인다. 

 

“FTX 파탄의 본질은 기업통치의 완전한 실패(Complete Failure)” 

 

이번 FTX 경영 파탄과 관련해서 살펴볼 관점은 대략 다음 3 갈래로 구분된다; 첫째, FTX는 왜 파탄에 이르게 됐나, 둘째, 금융시장 및 금융 시스템 전반에 어떤 영향이 파급될까, 셋째, 암호화폐의 장래는 어떻게 될까, 등이다. (아래 도표 참조) 

첫째; 기업통치의 ‘완전한 실패’가 이번 FTX 경영 파탄의 가장 큰 원인이다. 유수의 글로벌 암호화폐 플랫폼 FTX와 암호화폐 투자 이익을 증폭시키는 ‘연금술(鍊金術)’을 제공하던 융자 전문기업 BlockFi의 연쇄 파탄은 향후 암호화폐 시장의 급격한 위축 및 연쇄 파탄을 불러올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암호화폐 융자업은 Covid-19 사태 기간 중 재정 및 금융 완화 정책으로 풍부해진 시장 자금을 배경으로 고율의 수익률을 내걸고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상대로 ‘예금’ 형태로 자금을 모집한 뒤, 헤지 펀드 등에 대출하는 형태로 운용하는 방식으로 급성장했다. 

FTX 창업자 SBF는 이런 복잡 다단한 암호화폐 자금의 조달 및 운용 업무에서 고객 자산과 기업 자산을 구분 관리하는 대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아울러, 거액의 회사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한 마디로 기업 거버넌스가 전혀 기능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런 엄청난 규모의 거래 관리를 경험이 일천한 극소수 인원이 맡게 하는 등, 거의 ‘1인 회사’로 운용했다. 또한, 대부분 산하 기업들은 이사회를 한 번도 열지 않았고 지불 청구도 SNS의 그림 문자로 승인했다. 이런 허술하기 짝이 없는 행태가 횡행하던 FTX에 세계 유수의 자산운용사인 BlackRock, 벤처 캐피탈 Sequoia Capital, 싱가포르 정부 Temasek 등이 거액을 출자함으로써 허술한 STX 그룹을 실체 이상의 신뢰성을 높여주는 결과를 낳았다. 

 

둘째; 이번 사태로 은행 등 정통 금융 부문에도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일부 은행들이 의심을 받는 것은 이들이 암호화폐 이용자들이 구좌를 개설하고 24시간 365일 암호화폐를 환전, 송금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FTX와 거래 관계인 Silvergate Bank를 보유한 Silvergate Capital 주가는 이번 사태로 80%나 폭락했다. 만일, 암호화폐 관련 파탄이 이어지고, 많은 은행들이 큰 손실을 입게 되면 금융 시스템 전반에 심대한 타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외에도 FTX는 이미 경영이 파탄된 암호화폐 관련 금융기업들을 지원하거나 경영권 취득을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처럼 존재감이 크던 FTX의 파탄 여파는 더욱 확산될 우려가 크고, 향후 금융산업 전반에 신용불안이 증폭될 것이 예상된다. 

 

한편, 굴지의 글로벌 상업은행들을 포함해서 적지 않은 은행들이 이미 암호화폐 자체에 투자하거나 관련 기업들에 융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향후 이와 관련해서도 사태의 귀추를 주시할 필요는 충분하다. 이와 관련, 옐런(J. Yellen) 미 재무장관은 이번 사태로, 이미 철저한 감독 하에 있는 은행 등 정통 금융 부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낙관적으로 전망했다. 

셋째; 암호화폐 시장의 장래에 관한 불확실성도 가중되고 있다. 금년 5월 일어났던 소위 ‘알고리즘형 Stablecoin’이라는 USDTerra/Luna 붕락 사태로 격랑을 겪고 있던 와중에 또 다시 FTX 파탄이라는 대형 사태가 터지자 암호화폐 시장에는 그야말로 격진(激震)이 일어나고 있고, 전세계 약 600개에 이른다는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신뢰가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원래 암호화폐 비즈니스 모델은, 암호화폐 시장이 활황을 보일 때는 원만하게 돌아갈 수 있으나, 반대로 장세가 하락 기조에 들어가면 투자 유입이 급격히 줄어들고 자금이 역회전하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다. 이번에도 FTX가 발행한 자체 토큰인 FTT의 가격이 급락하자 이를 담보로 제공한 개인 투자기업 Alameda의 담보 가치도 따라서 추락했고, 이에 따라 자금 회전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 함께 경영 파탄에 이르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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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TX 파탄 영향은 전문 융자업체 등, ‘금융 혁신’ 분야로도 파급” 

 

이번 FTX 파탄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FTX 그룹에 이어 암호화폐 대출 기업 BlockFi社도 ‘Chapter 11’을 신청한 점이다. 2017년 창업한 BlockFi는 개인 및 기관 투자자들로부터 암호화폐를 예치 받아 이를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에 융자해서 이익을 얻는 소위 ‘금융 혁신’ 업무를 영위해 왔다. 그러나, FTX가 파탄하자 ‘자금인출 사태(run)’에 직면하게 됐고, 결국 ‘영업 정지’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BlockFi는 연 8.6%라는 높은 수익률을 약속했으니 은행 예금 금리가 0.002%에 불과한 초저금리 상황에서 암호화폐 투자자들에게는 엄청난 매력이다. BlockFi의 자산/부채 규모는 10억~100억달러로 알려지고, 채권자는 10만명 이상에 달한다.

이를 시작으로, FTX 파탄 충격은 그룹 내부에 그치지 않고 대체로 4 갈래 부문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FTX 그룹 투자자들의 지분 가치가 제로로 떨어질 것은 확실하다. 주요 주주인 Sequoia Capital은 이미 투자액(1억5,000만달러 추정) 전액을 손실 처리한다고 공시했다. 싱가포르 Temasek도 2억7,500만달러 전액을 손실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외에도 일본 Softbank, 한국 삼성전자 투자회사인 삼성 넥스트를 비롯한 69개 투자기관들이 투자금 전액을 손실 처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투자 손실을 감안해서 관련 기업 주가도 연일 하락 중이다. 

 

다음으로, FTX가 발행한 FTT 토큰을 다량 보유하고 ‘시장 조성자(market-maker)’ 역할을 했던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Binance 등도 보유한 FTT 토큰의 가치 붕락으로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다. 또한, FTX 거래소와 암호화폐 거래를 했던 고객들은 FTX가 관행적으로 고객 자산을 구분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거래했으나, 이번 ‘Chapter 11’ 신청으로 일단 자금 인출이 동결되고 말았다, 그러나, 거래소 본연의 수입원인 거래 수수료 수입에 그치지 않고, ‘보다 높은 수익을 위해(?)’ 고객 예치금을 다른 투자 및 융자 재원으로 유용한 실태가 드러나고 있어, 향후 자금 인출이 가능하게 되어도 얼마를 회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편, 이번 사태로 지금 글로벌 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는 암호화폐는 물론, 비대체성 토큰(NFT), 분산형 금융(DeFi) 등 ‘금융 혁신’ 분야에 인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들에 공통되는 것은 ‘분산형’ 및 ‘투명성’을 내세우며 현 중앙집권적 금융 질서를 대체하는 세계를 지향하는 점이다. 자산관리 효율성을 높이고, 국경을 넘는 거래도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게 하고, 누구나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금융 포섭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금융 기술 혁신의 장래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초점이다. 

 

지금으로서는 FTX 파탄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 등 첨단기술을 적용하는 금융 혁신의 중요성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중론이다. 그러나, 기술적 개념을 적용해서 새로운 금융 구조를 창조해도 실제로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이 투자 리스크를 부담하려 하지 않으면 금융 상품이나 서비스로 이용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암호화폐는 신용을 뒷받침하는 기초자산도 없고, 오직 개인의 믿음으로 가치가 유지되는 만큼, 가격 변동폭도 대단히 크고 결제 범위도 지극히 제한된다. 운용 자산으로 활용되는 것도 회의적이라는 견해가 많다. 이를 감안하면, 혹시, 기술적으로 확립되어도 실제로 금융기관이나 투자자들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없는 것이라면 관념 속의 세계가 실현되기는 아직 멀고도 멀 뿐이다. 

 

■ 크루그만 “암호화폐 시대는 끝날 것”, ‘본원적 가치’ 논란도 재연 


이번 FTX 파탄을 두고 2008년 서브프라임發 리먼 사태를 연상시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시는, 신용등급이 열등한(sub-prime) ‘주택담보모기지대출채권(MBS)’을 교묘한 구조화 증권 상품으로 둔갑시켜 내재한 리스크도 파악할 수 없이 시장에 유통시켜 불신을 확대했고, 결국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졌다. 이번에는,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성공 스타트업 창업자 SBF가 이끌던 FTX가 결국 엄청난 부실 경영의 오명을 쓰고 퇴장하기에 이르렀으나, 아직은 이번 사태가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파급될지 여부를 분명히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FTX에 이어 다른 암호화폐 관련 기업들의 허술한 행태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어 경계감은 날로 높아가고 있다. 

2009년 Bitcoin이 처음 출현할 때 창업자들은 “중앙 정부가 주도하는 중앙집권식 금융 시스템을 벗어나 글로벌 통화로 통용되는 공평하고 투명한 ‘분산형’ 통화제도를 만들 것”을 주창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그간 출현한 다양한 암호화폐 가운데 법정통화에 기반한 ‘중앙은행 디지털통화(CBDC)’를 제외하고는 가치의 교환(지급 결제), 가치의 보전(예금), 가치의 척도(재화의 가치 칭량)라는 통화의 본질적 기능 수행에 도저히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가름 나고 있다. 이에 더해, 빈발하는 암호화폐를 통한 자금세탁, 불법 자금 거래, 마약 거래 등 각종 불법 행위에 악용되는 등, 암호화폐와 관련한 폐해 및 부작용은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그럼에도, 주로 AI, IT 기술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하는 암호화폐 옹호론자들은 아직도 암호화폐가 수많은 컴퓨터에 연결되는 분산된 구조를 가지며, 이에 따라 정부나 당국에 의한 중앙 집권적 통제를 벗어나서 광범하게 통용될 수 있음을 내세우며 보다 값싸고 보다 신속하게 자금 이동이 가능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번 FTX 사태에 즈음해서 암호화폐 및 관련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세력을 얻고 있는 가운데, 암호화폐 자체의 존재 의의를 포함해서, 본원적 내재 가치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암호화폐의 원조 격인 ‘Bitcoin’이 처음 세상에 출현했던 2009년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기묘한 창조물로 비쳐졌을 것이나 지금까지 전세계에 출현한 약 2만 종목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암호화폐들이 공통으로 내재하고 있는 투자 매력은 역시 ‘투기로의 유혹’ 즉, 매입 가격보다 높게 팔 수 있다는 사행심(射倖心)이 중심이다. 

그렇다면, 암호화폐란 ‘화폐’로서의 본원적 기능보다 ‘투기(speculation)’ 수단으로서 모습이 더욱 어울리는 것이다. 투기 혹은 투기적 요소는 다양한 사람들을 시장으로 끌어 모으고, 가격 형성을 용이하게 하는 역할이 있다. 그러나, 투기는 참가자들이 다른 사람들 행동에 집중하게 되어 버블을 형성하기 쉽다. 이론적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암호화폐의 경우에는 그런 경향을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 흡사 라스베가스의 도박과 유사한 것이다. 참가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선행(先行) 참가자들이 이익을 늘리는 구조인 ‘피라미드 계(契)’와 공통되는 구조인 점도 분명하다. 

 

이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암호화폐들이 그야말로, 17세기 한 선각자가 ‘튜립 구근(球根)’ 버블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경고했던 것처럼 “바보들이 기묘한 것에 돈을 뿌리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될지, 아니면 독점적 지위를 가진 타락한 중앙은행들이 자의로 통화를 남발하여 경제를 망치는 것을 대체할 ‘공동이 관리하는’ 이상적인 글로벌 화폐로 부상할 것인지는 그간 시장에서 벌어져온 여러 현실들이 머지않아 확실히 증명해 줄 것이다. 단지, 지금까지 드러난 제반 사정을 감안해도 시장에는 당분간 지금과 같은 위중 상황이 계속될 것이고, 암호화폐 시장의 불안이 종식되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

 

최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Paul Krugman은 NYT에 기고한 논설(‘Blockchains, What Are They Good For?’)에서 이번 FTX 사태는 향후 일어날 많은 파탄 사례의 시작일 뿐이라며, 사람들은 암호화폐에 겨울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하나 이는 과소 평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번에 닥쳐올 겨울은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끝이 없는 겨울(Fimbulwinter)”이 될 것이며, 암호화폐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에 기반한 경제 생활 구성 이념의 모든 ‘가상 세상(crypto world)’의 종말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서도, 그간 호주증권거래소, Amazon 등, 도입을 시도했던 기업들이 결국 포기한 사례들을 열거하며 당초 기대와 달리, 블록체인 기술도 실제론 아무런 유용한 일을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전부터 암호화폐 회의론을 주장해 오고 있는 또 다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Robert Shiller 교수도 역사적으로 실패한 사례를 들면서 Bitcoin 등 암호화폐가 법정통화(fiat currencies)를 대체할 것이라는 혁신성에 깊은 의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는, 그럼에도 Bitcoin이 성행하는 것은 ‘유행을 쫓는 인간의 행동(faddish human behavior)’의 결과이며 컴퓨터 과학 분야이기보다 심리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 “美 의회 등, 방치하면 ‘재앙’ 인식 확산, 각국 규제 강화에 나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갠슬러(Gary Gensler) 위원장은 최근 FTX 경영 파탄에 즈음해서 “미국의 법 규제에 명확하게 준거하지 않는 암호화폐 업계에는 보다 양호한 투자자들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비판하고 있다. 갠슬러 SEC 위원장은 줄곧 ‘암호화폐 Bitcoin은 ‘증권’이 아니라 ‘상품’이라고 주장하며 SEC 보다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오고 있다. 

여기서 유념할 점은, 미국에 암호화폐 거래가 유행하고 있고, 간혹 공적기구 책임자들이 암호화폐를 법률로 규제해야 한다고 하거나, 더욱 현실적으로는 암호화폐 시장을 육성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것을 두고 미국이 암호화폐를 공식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하는 주장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입장을 살펴보면, 암호화폐 자체의 본질을 파악하기가 아직 이르고, 따라서 이에 대한 규제 혹은 법 제도를 정비할 필요성을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인식이 대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인식에서, 미국 사회는 우선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이해 방식이 현실에 더욱 적합한 것이라고 본다. 이로 인해 시장은 마치 방치되어 있어 ‘무법(無法) 천지’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여기서, 연준 파월 의장이 최근 암호화폐 시장에 대해 ‘지금 연준이 검토 중인 CBDC가 도입되고 제도적으로 정착되면 민간이 발행하는 암호화폐 시장은 자연적으로 소멸할 것’ 이라는 입장을 밝혔던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암호화폐를 둘러싼 각국의 규제 현황을 살펴보면, 우선, 미국의 경우에는 시장에 대한 감독이나 투자자 보호에는 뒤쳐져 있고, 단지 암호화폐 시장을 통한 자금세탁 등 불법 행위의 단속 적발에 주력하는 양상이다. 동시에, 속도가 아주 느리긴 해도 연준이 CBDC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었다. 유럽연합(EU)은 암호화폐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대부분 회원국들이 암호화폐를 합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시에, 소비자 보호 강화 및 관련 업자들의 등록제를 도입하기 위한 법률 안을 심의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은 이미 2017년에 암호화폐 사업자 등록제를 실시해 오고 있고, 고객 자산의 철저한 구분 관리를 의무화하고 있다. 중국은 암호화폐 전반에 대해 가장 엄격한 자세를 가지고, 일찌감치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을 전면 금지한 데 이어, 2021년부터는 금융 범죄의 방지를 위해 암호화폐의 채굴, 보유, 거래, 투자 등 일체의 활동을 금지한 바 있다. 

 

앞에 소개한 것처럼, 이번 FTX 사태를 계기로 각국은 암호화폐 시장 규제 강화를 위한 법 정비 등에 적극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정부는 특히 이웃나라 중국 및 일본 정부가 취해온 대응 자세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은 얼마 전까지 ‘암호화폐 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암호화폐의 채굴, ICO, 거래소 운용, 투자, 유통 등이 전세계에서 가장 활발했었다. 그러던 중국 정부가 2021년 금융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암호화폐 활동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고, 이에 따라, 잇따라 일어나는 암호화폐 스캔들 피해를 원천 차단할 수 있었다. 

일본도 한 때 암호화폐 활동이 번성하면서 Bitcoin 열풍이 불었으나, 당시 최대 거래소였던 ‘마운트 곡스(Mt. Gox)’, ‘Coincheck’ 등에서 불상사가 일어나자 2017년부터 자금결제법에 암호화폐 사업자 등록제, 고객자산 구분 관리 의무화 등을 근간으로 한 법령 정비에 나섰고, 금융청을 중심으로 암호화폐 거래소 및 거래와 관련한 사항들을 제도화함으로써 투명성 결여라는 고질적 문제를 엄중 감시하고 있다. 

 

■ 정부는 암호화폐에 대한 기본 인식부터 정립, 즉시 규제에 나서야   


암호화폐 시장이 투기의 대상이 되는 것 외에 경제 사회에 별다른 기여나 이익이 없는 존재라면, 이는 분명히 금융 활동이기보다 투기자들에게 라스베가스나 강원랜드 게임장처럼 도박판을 제공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보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암호화폐 사업 모델이 실정법 상 분명히 불법인 ‘다단계’ 혹은 ‘폰지’ 사기(詐欺)인지 여부는 차치하고, 도박이나 흡연 등 위해(危害) 행위도 이를 완벽하게 금지하기 어려운 경우와 흡사하다면, 암호화폐에 내재된 투기적 속성에 따른 폐해에 대해서는 이런 폐해를 제공하는 당사자들에게 정부가 적절한 부담을 지우는 엄격한 법 규제를 도입하거나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유효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 정부가 취하는 대응 자세를 살펴보면, 이번 FTX 파탄 사태가 거래소 자체 발행 토큰 FTT가 주요 원인이라는 사실이 전해지는 상황에서도 한국에는 거래소 자체 발행 코인이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이전 USDTerra/Luna 붕락 사태 직후에도 아무런 기초자산 없이 단순 알고리즘에 근거한 Luna 코인이 국내 거래소에서 수억 건이나 거래됐다는 사실이 전해져 많은 이들을 경악케 한 적이 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암호화폐의 위험성에 얼마나 무신경하고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해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현실에서 드러나는 암호화폐 관련 불법 사태는 전적으로 개발자들의 오만한 확신, 주변의 충동, 투자자들의 무모한 탐욕, 업계 자정 능력 결여, 그리고 정부 당국의 방관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일어나는 인재(人災)일 뿐이다. 그리고 이런 사태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단 사건이 벌어지면 시장은 순식간에 무너지고 혼란 속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손을 쓸 겨를이 없게 되고 만다. 따라서, 암호화폐와 관련한 사전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 외에는 달리 묘책이 없다. 

우선, 정부 당국은 암호화폐에 대한 기본 인식과 자세를 명확히 정립할 일이다. 암호화폐 개발자들이 표방하는 ‘법정통화를 대체하고 글로벌 통화로 통용될 것’이라는 구호는 이미 허공으로 사라진 지금까지 본격적인 공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보다 현실적으로, 우리 정부는 과연 민간 주체들이 발행하는 암호화폐가 ‘한국은행법’에 정한 중앙은행의 발권력에 기반해서 발행되는 법정통화인 원화를 대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인지, 그래도 무방하다는 것인지, 분명한 자세를 정해서 공표할 일이다. 또 한 가지, 어쩌면 보다 중요한 관점은, 암호화폐가 국가 경제 사회에 과연 어떤 기여를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암호화폐 시장을 통한 ‘디지털 금융(DeFi)’ 등 ‘금융 혁신’에 대한 기대를 말하기도 하나, 과연 그들의 주장대로 금융 혁신이란 것이 반드시 이런 폐해를 내재한 암호화폐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도 중요한 선결 명제일 것이다. 

 

흔히, 현재 암호화폐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기 현상을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횡행했던 ‘튜립 구근(球根)’ 버블에 비유하나, 지금은 거래의 범위나 규모가 당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광범하고 방대하다. 따라서, 어느 한 나라가 자기 집 마당만을 쓸어낸다고 해서 근절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는 각국 공통으로 적용될 국제적 룰을 협조적으로 제정하는 것이 시급한 실정이다. 마침, FTX가 파탄하기 꼭 1개월 전에 주요 25개국 금융당국 및 중앙은행들이 결성한 금융안정이사회(FSB)가 “International Regulation of Crypto-asset Activities; A proposed framework - questions for consultation” 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공표했다. FSB는 이 보고서에서 ‘암호자산(Crypto Asset) 및 시장’, ‘글로벌 Stablecoins(GSC)’에 대한 국제 규제 도입을 위한 9개 항목을 열거했다. 이 가운데 ‘국경을 초월하는 협력, 조정 및 정보 공유’, ‘기업통치구조(Governance) 개선’, ‘리스크 관리 강화’, ‘정보 공개’ 등, 각국이 암호화폐 시장 규제에 유념해야 할 핵심 내용들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제 막연하고 애매한 기대와 현실적 근거가 희박한 주장에 더 이상 매몰될 게 아니라, 합리적인 현실 인식에 기초해서 향후 예견되는 암호화폐 시장의 더 큰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담대한 정리 정돈에 나설 때가 됐다. 지금 암호화폐 시장 문제는 흡사 ‘폭탄 돌리기’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에 뒤쳐져 행동에 나서는 측은 필경 모든 폐해를 뒤집어쓸 게 분명하다. 그간 일부 시장 참가자들의 부질없이 일확천금을 꿈꾸는 광풍에 밀려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규제 강화 조치에 불퇴전의 굳은 각오로 나서야 할 때다. 실은, 지금이라도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감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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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2년12월19일 10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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