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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양성하지 않고, 미래 먹거리 산업이 가능하다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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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3월16일 17시10분

작성자

  • 김광두
  •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GFIN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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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미래 먹거리산업에 대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에 이어 바이오 산업의 발전을 적극 거론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반도체나 바이오와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의 경쟁력 확보는 관련 고급 기술 인력의 원활한 공급이 전제될 때 그 가능성이 크다. 고급 기술 인력의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는 미래 먹거리산업에 대한 담론은 허공을 떠도는 뜬구름과 같다.

 

얼마 전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가 서울에 왔었다. 그는 한국의 4대 재벌 총수들을 숙소로 불러 일렬로 앉혀놓고 면담했다. 그는 지난해 사우디를 방문한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을 가볍게 거절하기도 했다. 이 막강한 위세(位勢)는 무엇을 바탕으로 가능할까? 원유와 오일달러라고 생각한다.

 

1973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국제 원유 가격이 1배럴당 2.9달러에서 12달러로 폭등했다. 1973년에 1차 오일쇼크를 일으켜 사우디 등 산유국의 위상을 한층 고양(高揚)시키고 막대한 오일 달러의 축적이 가능하게 한 인물이 고(故) 아메드 자키 야마니 전 사우디 석유장관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빈 살만 왕세자의 이런 위세가 가능할까?

 

야마니는 1962년부터 1986년까지 24년간 사우디의 석유장관으로 재임했다. 그는 가격과 물량 쿼터라는 독과점 기업의 전략 수단을 적절히 구사하여 석유수출국기구(OPEC)회원 국가들을 단합하게 하고 서방 국가들을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는 뛰어난 전략가였다.

야마니라는 한 사람이 1973년 이전의 무력했던 사우디를 강대부국으로 도약하게 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의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그런데 러시아 경제는 예상보다 잘 버티고 있다. 서방 경제의 구조와 운영 원리를 꿰뚫고 있는 고급 인력들을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벨 소로킨 에너지부 차관은 37세의 젊은 인재다. 그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모건 스탠리에서 경력을 쌓은 금융 전문가다. 그는 러시아 원유 가격의 큰 하락을 막는데 그의 금융 지식을 활용했다. 원유 선물 시장의 중요한 변수인 원유 공급 전망에 영향을 미치는 흑해 송유관 파손의 파급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구사해서 러시아산 원유 가격의 폭락을 막았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결재를 루블로 하는 전략을 써서 일부 서방 기업들이 제재를 피해가도록 한 막심 오레시킨(38세) 엘친 대통령 경제 고문도 프랑스의 크레디아그리콜에서 경력을 쌓은 금융 전문가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핵심 고급 기술인력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으로 연수를 보냈다. 그들이 전후 일본 경제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국가 핵심 산업의 발전은 결국 사람 손에 달렸다는 당시 일본 지도자들의 지혜로 가능했다.

 

벤처 비즈니스에 투자하는 벤처 캐피탈(VC) 회사들은 흔히 신기술 비즈니스의 사업성에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본부를 두고 있는 ANTLER라는 글로벌 VC는 다른 VC와는 차별화된 다른 접근을 한다.

 

이 회사의 캐치 프레이즈는 “Find People and Funding to Build Something Great”이다. 사업의 채산성이 아니라 신기술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이 사람을 믿고 투자하겠다는 것이 이 회사의 자금 운용 지침이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이 회사의 영업 성과는 매우 좋다. 모든 일의 성패가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달려있다는 인식이 좋은 성과로 나타났다고 본다.

 

1960~70년대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하고, 연이어 반도체 자동차 등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주력 산업들의 국제경쟁력 기반 구축이 가능했던 것도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그 결과 축적된 좋은 인재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현재 핵심 산업 인력이 점점 부족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은 더해 가는데 막상 반도체 관련 전문 인력 양성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속이 타는 기업들이 직접 대학과 협력 프로그램을 만들어 인력 양성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들을 교육하고 지도할 교수들은 여전히 부족한 것이 한국 대학들의 현실이다. 조선업과 같은 전통산업에서는 숙련된 기능 인력이,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에서는 고급 전문 인력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공대 신입생들이 의대로 몰려가고, 이공계 대학원생들의 중도 퇴학이 증가하고 있다. 2022년 이공계열 대학원 석·박사 중도이탈자는 4,682 명인데 이 숫자는 추세적으로 점증하고 있다. 이들의 이탈 대열에는 반도체나 바이오 전공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과계 지망생들이 이탈하지 않고 전원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해도 그들을 교육할 대학의 현실은 암담하다. 교수도 연구 실험 설비도 모두 어려운 상황에 있다.

 

대학 등록금이 동결된 후 15년이 지났다. 그렇다고 기부금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개선도 없었다. 오히려 최순실 사건으로 대기업들의 기부 행위가 극도로 위축되면서 대학들은 대기업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부의 대학 지원이 이런 빈 공간을 채울 만큼 늘어난 것도 아니다.

 

그 결과 대학 신임 교수의 봉급은 대학 졸업생들의 신입 사원 연봉 수준과 비슷해졌다. 이공계 전공 박사들에 대한 수요는 선진국일수록 많다. 해외에서 교육받은 이공계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안고 한국의 대학에 올 이유가 없다.

 

연구 시설은 더 열악하다. 대학의 실험 실습실에서 활용해야 할 기자재들은 대부분 고가의 장비들이다. 최신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실험 장비일수록 더욱 구매 비용이 크다. 재정이 열악해진 대학들이 이런 고가의 장비를 구입할 수 있겠는가?

 

최근의 기술 지식을 교육받은 교수도 모자라고, 그 기술을 습득하는데 필수적인 실험 기자재도 없는 대학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춘 반도체, 바이오 산업 인력이 양성될 수 있겠는가?

 

정치인들은 원론적인 구호를 좋아한다. 그리고 일반 대중들은 그 구호가 감성적일수록 크게 박수를 친다. “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대학 등록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구호는 그럴 듯하다. 그러나 그 서민들에게 좀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베트남 등의 신흥국들이 우리를 뒤쫓고 있다. 저가 공산품은 이제 그들이 우리보다 값싸게 생산한다. 우리의 산업 구조가 반도체, 바이오 등의 고부가가치 업종 중심으로 바뀌지 않으면 우리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타이타닉 호를 만들었던 영국 조선업이 현재 어떻게 되었는가?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고민의 실체가 무엇인가? 그 고민이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인력 양성의 청사진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가가 불안한데 등록금마저 올리면 내년 총선에서 불리할 거라고? 대학에 기부금이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면 서민들 표가 떨어질거라고? 만약 이런 계산이라면 그 정치 지도자는 국가와 국민의 미래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정상배(政商輩)일 뿐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그의 정치 생명을 걸고 연금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기 때문이다. 독일의 슈뢰더 전 총리는 총리로 재임시 그의 정치적 패배를 각오하고 노동 개혁을 단행하여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 경제의 회생 기반을 구축했다.

 

이들은 국가와 국민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찐’ 정치가(Statesman)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미래 지향형 정치를 해서 이들 찐 정치가들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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