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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하는 확실한 법칙 혼군 #20 : 북제 창업자 고환의 업적을 다 까먹은 아들 고담과 손자 고위 <M>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06월09일 16시50분
  • 최종수정 2023년04월03일 11시09분

작성자

  • 신세돈
  • 숙명여자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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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서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83> 태자 고은(AD558)

 

고양의 아들이자 태자인 고은은 똑똑하고 온유하며 학문을 좋아했다. 보기 드문 인재였고 황제 재목이었다. 모든 사람이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만 정작 그 아버지 고양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한인을 닮아서 너무 나약하고 소심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금봉대에 올라서 고은에게 칼을 주면서 죄수를 손수 죽이게 했다. 태자는 측은한 마음에 두 번 세 번 내리치고도 목을 자르지 못했다. 고양이 크게 화를 내면서 말채찍질로 고은을 내리쳤다. 너무 몰란 고은은 그 후부터 말을 더듬고 정신이 흐리멍텅해 졌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고양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 태자가 너무 나약해.

    사직의 일은 매우 중요하니 앞으로

    마땅히 상산왕에게 황제 자리를 계승할 것이다.”

 

태자소부 위수가 양음에게 말했다.

 

  “ 사직이야 말로 국가의 근본이어서 흔들리면 안 됩니다.

    폐하께서 술 세 잔만 드시면 

    말끝마다 상산왕에게 계승하신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신하들이 두 마음을 품도록 의심하게 됩니다.

    이런 말은 장남삼아 할 말이 아니니 조심하도록 하셔야 합니다.”

 

양음이 위수의 말을 황제에게 전달했고 고양도 그 말을 듣고 입을 닫았다. 


<84> 탁월한 삼공낭중 소경

 

고양이 잔학한 만큼 옥리들도 잔혹스럽게 옥사를 처리했다. 죄수를 심문하면서 쟁기를 달구어 그 위에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수레바퀴 철관을 달구어 그것으로 사람의 팔을 꿰기도 하였다. 심문을 당하는 사람들은 고통을 못 이겨 거짓으로 자백하고 형벌을 받았는데 자백한 사람 대부분에게 죽음이 내려졌다.

 

무강 사람 소경은 삼공낭중으로 있으면서 관용과 공평함으로 판결을 내리는 소문이 온 나라에 퍼졌다. 당시 조주에서 모반의 밀고가 있어서 소경이 수사를 했는데 모반밀고가 모함임이 깔끔하게 드러났다. 상서 최항이 소경에게 말했다.

 

  “ 만약 공명을 생각한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지 어찌 반역을 일으킨 사람을 무죄로 석방하는거요?”

 

소경이 정색을 하며 대꾸했다.

 

  “ 죄가 없는 사람을 죄가 없다고 한 것이 뿐이요,

    반역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소.

    내가 공명을 좇다니 그건 무슨 황당한 말씀이시오?”

 


<85> 억울하게 죽은 사부상서 왕흔(왕원경)-고양의 잔학함(AD558)

 

고양은 화가 나면 관료들 조차도 종으로 삼아서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곤 했다. 실제로 임장 현령 계엽과 사임 이문사가 그렇게 종이 되어 남에게 넘겨졌다. 중서시랑 정이가 사부상서 왕흔에게 찾아와서 말했다.

 

  “ 옛날부터 관리가 종으로 된 적이 없었소.”   

 

왕흔이 조용히 말했다.

 

  “ 기자(은왕조 주왕의 삼촌)는 노예가 된 적이 있소.”

 

중서시랑 정이는 고양에게 가서 왕흔이 황제를 은왕조의 주왕과 비교했다고 무고했다. 황제는 왕흔을 주연에 불렀는데 병을 핑계로 나타나지 않자 군사를 보내 왕흔을 잡아들였다. 왕흔은 잡힌 몸이었지만 무릎을 꿇고 시를 읊으면서 태연하게 대응했다. 고양은 왕흔의 목을 내리치고 시체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  

 

<86> 북제의 축성과 재정 고갈(AD558)

 

고양은 삼대 건축은 물론 국경의 북쪽에 장성을 쌓고 남쪽으로도 허수아비 양의 황제 소장을 돕느라고 엄청난 재정을 고갈시켰다. 군사들과 말들도 수십 만 죽어나갔고 창고도 텅텅 비게 되었다. 마침내 백관들의 봉록을 줄이고 군사들에게 지급할 군량미도 삭감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 북성을 시찰했는데 그 길에 동생 영안왕 고준과 상당왕 고환이 지하감옥에 갇혀있는 것을 보았다. 황제는 측은한 마음이 전혀 없이 굴로 내려가서는 노래를 부르면서 동생들을 문안했다. 동생들이 흐느끼며 노래로 대답하자 고양 또한 슬픔이 북받쳐 그들을 살려줄 생각이 들었다.

 

장광왕 고담이 고준과 사이가 나빴는데 고양에게 물었다.

 

  “ 맹호를 동굴에서 내 보낼 생각이시라면서요?

    그게 말이 됩니까?”

 

고준이 그 소식을 듣고 고담을 꾸짖었다.

 

  “ 보락계(어릴적 이름)야 하늘이 내려다보고 계시다!”

 

고양 또한 고준의 명성이나 지략이 뛰어난 것을 알고 있었다. 맹호라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마침내 사람을 보내 고준을 찌르게 하였다. 몇차례 고준과 고환이 칼을 잘 피하자 감옥에 불을 질러서 태워 죽인 다음 감옥 굴을 흙과 돌로 메워버렸다. 며칠 뒤 메운 것을 파내었는데 시체는 숯처럼 까맣게 타버렸다. 원근 사람들이 고준의 죽음을 크게 애통해했다. 

 


<87> 우문호 정권 이양(AD559)

 

우문호는 정권을 우문육에게 이양했다. 이 때 우문육이 26세 였으니 만기친람의 나이로는 충분했다. 그러나 우문호는 병권을 장악하고 나머지 권한만 넘겨주었다.

 


<88> 끔찍한 고양(AD559)

 

고양은 감로사라는 절에서 주로 좌선을 하면서 간간히 군국 정사를 맡고 있었다. 이 때 상서좌복야 최섬이 죽었다. 고양은 최섬의 집에 들러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 최섬 좌복야 생각이 많이 나겠습니다.”   

 

최섬의 아내가 그렇다고 하자 고양은 갑자기 소리쳤다.

  “ 그렇다면 당장 스스로 그에게 가서 그를 살피시오!”

 

손수 칼로 최섬의 아내 목을 베고 담장 밖으로 내다 버렸다.

 

고양이 즉위하기 전 동위의 재상으로 있을 때 두필이라는 사람을 장사로 삼았었다. 4년 전인 AD550년 고양이 원선견에게 선양을 받으려고 할 때에 두필은 간언하여 중단된 적이 있었다. 당연히 고양은 두필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황제가 된 고양이 두필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인재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물었는데 두필은 이렇게 대답했다.

 

  “ 선비족들은 거마객이니

    모름지기 중원 출신을 써야 합니다.”  

 

상서우복야 고덕정은 평소 두필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므로 종종 두필의 흉을 지적하곤 했다. 두필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학식과 고견으로 고덕정을 눌렀기 때문에 악한 감정이 쌓여가기만 했다. 고양이 두필에게 악감을 품고 잇는 것을 알았던 고덕정은 계속해서 두필의 허물을 지적하니 술에 취한 고양은 마침내 교주자사 두필에게 사람을 보내 목을 치게 하였다. 술에서 깬 고양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서둘러 사람을 보냈지만 이미 두필의 목은 날아가고 난 다음이었다. (AD559)   

 


<89> 고양의 폭정(AD559) - 원씨 모두 죽임

 

상서우복야 고덕정은 양음과 동시에 재상이 되었는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고덕정은 틈만 나면 양음의 흉을 고양에게 털어놓았다. 고양은 그런 고덕정을 꺼리고 있었다.

 

  “고덕정은 항상 다른 사람을 정신적으로 핍박하고 있다.“

 

고양이 직접 이런 말을 공공연히 내뱉자 고덕정은 겁이났다. 병을 핑계로 사직을 하겠다고 요청했다. 고양이 양음에게 고덕정의 병환을 예기하자 양음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만약 그를 기주자사로 내보낸다면 즉시로 그의 병이 나을 것입니다.“

 

실제로 황제가 그렇게 임명하는 조서를 내리자 그것을 받아본 고덕정을 즉시로 병상에서 일어나 기뻐했다. 고양은 고덕정의 병이 꾀병이라는 것과 양음과의 다툼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고덕정을 불렀다.

 

  ” 네가 아프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내가 직접 침을 놓아줄 것이다.“

 

고양이 작은 칼을 가지고 고덕정의 몰을 찌르니 피가 흘러나왔다. 고양은 그를 끌고 내려가서 호위군사 유도지에게 고덕정의 발목을 자르라고 했다. 유도지가 머뭇거리자 고양이 호통르 쳤다.

 

  ” 네 목이 떨어지고 싶은 거냐! “

 

놀란 유도지가 칼을 내리쳐서 고덕정의 발가락 셋을 절단했다. 그래도 분이 가라앉지 않자 고양은 고덕정을 문하성에 가두었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려보냈다.  다음날 일찍 고덕정 가족들이 보물을 몇 상자 챙겨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 할 때 고양이 나타나서 그 보물들을 보았다. 고양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가지고 있는 보물에도 이런 것은 없다!“

 

추궁해보니 모두 옛 북위 원씨들이 고덕정에게 뇌물로 준 것들이었다. 고양은 고덕정을 끌어내어 목을 베었다. 나와서 절을 하고 사죄를 하려한 그의 부인과 아들 고백견의 목도 그날 같이 날아갔다. 

 

고양은 팽성공 원소에게 이렇게 물었다.

 

  ” 한 나라 광무제(유수)가 중흥을 한 이유가 무엇이지요“? 

 

원소가 대답했다.

 

  ” 여러 전한 황족 유씨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 준 것입니다.“

 

고양은 그 반대로 하기로 결심했다. 살아있는 모든 원(탁발)씨를 색출하여 죽였다. 원씨 성을 가진 25개 가족을 살해하고 원소의 19개 가구는 가두었다. 원소는 땅굴에 갇혀 굶어 죽었다.

 


<90> 고양이 술에 쪄들어 죽다(AD559)

 

고양이 술을 너무 즐기다가 병이 나서 다시는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고양은 부인 이씨에게 말했다.

 

  ”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하겠소.

    그러나 태자(고은)가 어려서 

    다른 사람들이 탈취할 것을 생각하니 가련할 뿐이오.“ 

 

상산왕 고연에게 말했다.

 

  ”찬탈할 것이라면 너에게 맡길 터이니 그를 죽이지는 말아라.“

 

고양은 네 명의 고명대신 양음, 고귀언, 연자헌, 정이에게 유조를 받들게 하고 10월 10일 죽었다. 눈물을 흘린 사람은 양음뿐이었다. 이 때 고양의 나이는 31세였다. 

 


<91> 고양왕 고식이 누태황태후에게 태장 100대를 맞고 죽음(AD559)

 

고양왕 고식은 고환의 열한 번째 아들이었다. 워낙 언변이 뛰어나고 궤변을 잘 늘어놓은 데다 고양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면서 난폭한 짓을 서슴지 않았다. 황제의 좌우에 서서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여러 친왕들을 때리곤 했었다. 고양이 죽고도 정신을 못 차린 고식이 죄를 범하자 누태황태후는 고식에게 장 100대를 내리쳐서 죽여 버렸다. 

 

북제 조정에서는 상산왕 고연을 태사 녹상서사로 삼고 장광왕 고담을 대사마, 평진왕 고귀언을 사공, 조군왕 고예를 상서좌복야에 임명했다. 사실상 실권을 고연과 고담 형제가 장악한 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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