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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겨웠던 코로나19 팬데믹, 결국 우리가 이기고 말았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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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05월28일 17시10분

작성자

  • 이덕환
  •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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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5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적으로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의 종식을 선언했다. 2020년 1월 30일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PHEIC)를 선포하고 3년 4개월 만의 일이다. 우리 정부도 지난 11일 공식적으로 코로나19의 종식을 선언했다. 이제 코로나19는 독감(인플루엔자)과 같은 엔데믹(풍토병)이 돼버렸다. 

 

  어쨌든 우리가 애타게 기다렸던 포스트코로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은 사라지고, 낯설고 힘겨운 ‘뉴노멀’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많은 인문학자의 일반적인 전망은 설득력이 없었다. 슬라예보 지젝을 비롯한 많은 인문학자들의 호들갑스럽고 암울한 예상과 달리 오히려 세상은 과거의 익숙했던 일상으로 빠르게 되돌아가고 있다.

 

  다시 문을 연 학교와 공연장의 모습도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행객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 전 세계의 항공사가 넘쳐나는 여행객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유일하게 코로나19 이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낯선 풍경일 뿐이다. 코로나19의 아픈 경험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빠르게 잊히고 있다.

 

  낯선 뉴노멀에 대한 어설픈 두려움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익숙했던 일상을 되찾기 위한 차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그 출발은 고통스러웠던 코로나19 팬데믹과 힘겨웠던 방역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깊은 반성에서 시작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남긴 상처

 

  중국 우한에서 갑작스러운 고열로 시작해서 치명적인 급성 폐렴으로 진행되는 괴질(怪疾)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WHO에 접수된 것이 2019년 12월 31일이었다. 우한의 수산물도매시장 근처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괴질은 ‘SARS-CoV-2’라는 흉한 이름이 붙여진 바이러스 때문에 발생한 재앙이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일반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이고, 2009년의 SARS와 2015년의 MERS를 일으켰던 바이러스와도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다.

 

  2020년 1월 20일 우리나라로 번진 코로나19의 전파력과 독성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중국 우한에서 입국한 여행객이 확진자로 밝혀지면서 우리의 고통스러운 코로나19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결국 코로나19는 홍콩‧싱가포르‧캐나다를 거쳐 2020년 3월 미국 샌디에이고까지 번졌고, 그 이후 빠른 속도로 유럽과 아시아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런 코로나19 팬데믹이 남긴 상처는 참혹했다. 전 세계 227개국에서 6억9000만 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고, 690만 명이 목숨을 잃어버렸다. 검사‧추적‧치료(3T)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고집했던 K-방역을 자랑하던 우리의 최종 성적표도 실망스러울 정도로 초라했다. 인구의 60%가 넘는 3200만 명이 감염됐고, 3만4700명이 사망했다. 감염자의 규모로는 미국·인도·프랑스·독일·브라질·일본에 이어 세계 7위고, 인구당 감염률로는 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프랑스에 이어 세계 4위다. 특히 뒤늦게 찾아온 델타와 오미크론 변이에 속절없이 당해버린 결과다.

  그나마 누적 치명률이 0.13%로 세계 73위로 낮은 것이 작은 위안이다. 우리의 보건‧의료 체계가 다른 나라보다 월등하게 뛰어났다는 뜻이다. 초등학교까지 퍼지고 있다는 ‘의대 쏠림’이 만들어낸 웃지 못할 결과다.

 

팬데믹은 낯선 일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역사상 최악의 감염병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 세기 전인 1918년 봄에 발생해서 1919년 가을에 홀연히 사라져버린 스페인 독감은 당시 16억 인구 중 30%가 넘는 5억 명을 감염시켰고,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나라에서도 20만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당시의 전 지구적 감염 확산은 놀라운 일이었다. 감염병 확산의 지름길로 알려진 자동차·기차도 흔치 않았고, 비행기 여행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감염병이 소강상태를 보엿던 것도 아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에도 평균 5년마다 팬데믹에 가까운 심각한 감염병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팬데믹은 우리에게 절대 낯선 일이 아니었고, 그런 사정은 앞으로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팬데믹이 남긴 피해는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다. 덴마크‧네덜란드‧이스라엘‧오스트리아‧프랑스‧스위스는 인구의 40% 이상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독일‧이탈리아‧스페인‧미국‧스웨덴‧호주의 감염률도 20%를 넘었다. 일본은 5.8%로 비교적 선방했다. 처음부터 강력한 국가 봉쇄 정책을 시행했던 뉴질랜드‧대만‧중국의 방역도 성공적이었다.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보건의료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고, 대량의 백신을 확보할 수 있었던 미국‧영국‧프랑스‧독일과 같은 선진국의 피해가 컸던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보건의료 환경이 열악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감염 상황은 오히려 나은 편이었다. 물론 그런 결과는 상당한 비용과 기술력이 필요한 검사의 규모에서 비롯된 착시 현상일 수도 있다.

 

  국가별 방역의 성과를 서로 비교하는 일은 쉽지도 않고, 크게 의미 있는 일도 아니다. 국가의 방역 정책 선택은 쉬운 일이 아니다. 봉쇄‧차단을 핵심으로 하는 중국의 고강도 ‘제로 코로나’도 있었고, 무(無)대응이 최고의 방역이라고 믿었던 스웨덴의 ‘집단면역’ 시도도 있었다. 어느 것도 완벽하지 않았다.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던 중국의 ‘제로 코로나’는 극단적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한 국민의 반발로 무너졌다. 스웨덴의 방역도 통계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노약자에게 집중된 피해 상황을 지켜보는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최고의 경제력과 보건‧의료 체계를 갖춘 미국을 세계 최악의 감염대국으로 만들어버린 트럼프의 ‘선동적 방역’도 있었다.

 

들쭉날쭉했던 K-방역

 

  모두 8차례의 힘겨운 고비를 넘겼던 우리의 방역의 성과는 시기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전 세계 190여 개 국가가 우리 국민의 입국을 거부하거나 제한당하는 단군 이래 최악의 부끄러운 상황도 겪었다. 그런데도 방역 실패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했던 여당이 2020년 4월의 총선에서 대승(大勝)을 거둔 것은 역설적이었다. 

  우리의 감염 상황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때도 있었다. 정부가 떠들썩하게 K-방역을 자랑했다. 그러나 우리의 방역에 분명한 철학이나 과학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결국 우리 사회는 ‘정치방역’ 논란으로 평가되는 어려움도 겪었다.

 

  질병관리본부가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되었지만, 방역의 책임은 오히려 문외한인 정치인과 정체불명의 청와대 방역기획관에게 넘어가 버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설프게 밀어붙였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무차별적인 검사‧추적‧격리, 마스크 의무착용, 백신 접종 등이 모두 국민적 설득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2021년 11월에 시작된 어설픈 일상회복이 최악의 악수(惡手)였다. 오미크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상황에서 백신 접종 기록을 근거로 했던 ‘방역패스’에 대한 기대는 섣부른 것이었다. K-방역의 핵심이었던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면서 곧바로 걷잡을 수 없는 6차 확산이 시작되었다. 2022년 3월에는 하루 확진자가 세계 최고인 64만 명을 기록했다. 오미크론 변이의 독성이 크게 줄어든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과학‧표적 방역을 내세운 새 정부에서의 상황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초대 질병관리청장은 적임자가 아니었고, 교체된 청장도 국민의 시야에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엉뚱하게 등장한 ‘코로나19특별대응단장 겸 감염병위기대응자문위원장’의 요란한 독설도 볼썽사납다. 우리가 백신‧치료제를 개발하지 못했다는 자책은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안심할 수 없는 미래의 팬데믹

 

  감염병은 군집 생활을 하는 인간을 비롯한 생물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감염병은 생물의 몸속에 기생할 수 있는 바이러스·박테리아·기생충에 의해 발생한다. 감염병을 일으키는 미생물들이 인간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을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싶어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미생물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우리와 갈등을 일으키게 될 뿐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한 환경 파괴 때문에 감염병이 더 자주 발생하고, 감염병의 독성이 더 강해진다는 주장은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운 억지다. 감염병의 발생을 막기 위해서 생태계와의 접촉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비현실적이다. 

 

  방역은 현대 국가의 가장 막중한 책무이다. 그러나 가장 합리적이고 정확한 방역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감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병원체의 역학적 특성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방역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작용을 최소화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역시 어떤 경우에도 방역의 핵심은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검사·추적·완화(test·track·mitigation)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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