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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동의 문화시평 <22> 미술품 물납제도의 정착을 위해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3년11월27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23년12월11일 09시44분

작성자

  • 김찬동
  • 전시기획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초빙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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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미술관의 경쟁력은 소장품의 수준과 그 양으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인 루브르의 모나리자가 가지는 위력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뉴욕의 MoMA나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의 무수히 많은 탁월한 작품들은 소장자들이나 유족들의  기증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세계적인 대가들의 명작들을 미술관이 예산을 들여 구입하는 일은 쉽지 않은 관계로 대개는 소장자의 기증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피카소미술관의 경우, 1973년 피카소가 사망하면서 유가족들은 작품들의 분산을 막기 위해 수천 점의 작품을 상속세 대신으로 납부하였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파리의 한 저택을 지정해 이 작품들로 1985년 피카소미술관의 운영을 시작하였고, 일반대중에게 공개하여 향유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 유치를 통한 관광수익을 달성하고 있다. 

 

이처럼 서구 여러 나라에선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 및 문화재에 대한 상속세나 증여세의 물납이 가능한데, 이를 물납제라 한다. 물납제도를 이용하면 국가는 우수한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연간 예산 규모로는 구입이 어려웠던 고가의 미술품들에 대해 국가로 소유권을 귀속시켜 보존 및 전시가 가능해지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소유자는 막대한 상속세나 증여세를 현금이 아닌 작품이나 건물 등으로 대신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선진국에선 오래전부터 이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도 2021년 말 문화재 및 미술품의 물납을 허용하는 조항이 신설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올해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2020년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국가지정문화재를 경매에 내놓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사망 이후 그의 상속재산과 관련하여 고인의 소장미술품 및 문화재의 처분에 대한 높은 관심이 일어나면서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었다. 하지만 현재 시행 1년을 맞는 이 제도의 운영 실적이나 성과가 어떠한지는 아직 조사되거나 발표된 바 없다. 제도가 정착되며 효과를 거두기까지는 제도 운용 면에서 여전히 해결할 문제도 많고, 또 시간도 필요할 것이지만 1년의 시행성과를 평가하는 보고서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우선 물납 대상이 되는 작품의 선정기준이나 가치평가 등과 관련된 제도가 선결되어야 하고 이를 수행할 전문기구가 구성되어야 한다. 물론, 현재로는 물납을 원하는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두어 이를 심의 결정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의 방점이 우수한 미술품을 보존하는 데 있는 것인지, 납세자의 납세 편의를 위한 것인지가 분명치 않을뿐더러, 복잡한 세법과 처리 절차 등도 정리되어야 한다. 제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이 제도를 활용할 경우, 처분을 통해 물품을 현금화하는 것보다 해당 품목에 대해 더 높은 가치평가를 받게 된다든지, 영국처럼 물납 승인 시 상속세의 25%를 감면해 준다든지 하는 이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물납 대상 작품의 수준을 결정하는 일일 것인데 이 기준이 정확지 못하다면 물납 후 국공립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전환될 작품의 수준이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며 기준이 너무 높다 보면 이 제도를 통해 물납을 할 수 있는 작품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심의나 결정 과정이 길어진다거나 평가액이 당사자의 추정치와 크게 차이가 날 때, 납세자가 곤란한 지경에 처할 수도 있다.

 

  이 제도의 비중을 우수한 문화유물이나 미술품의 해외 유출을 방지에 둔다면, 일본과 같이 사전에 물납 대상 작품의 신청을 받아 유물이나 미술품을 국가가 등록하는 미술품등록제도를 함께 운용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이 제도는 엄선된 기준으로 등록작품을 선정하고 선정된 작품을 국가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사전부터 보관 관리하다가 물납 결정을 해야 할 때 절차를 통해 국가에 귀속시키는 것으로 물납을 원하는 유족이나 소장자가 사전에 적절한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일본의 경우, 생존작가의 작품에 대한 등록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2021년 4월부터는 제작자가 생존 중인 미술품 중 10년이 경과하고 이전에 미술관에서 발표된 이력이 있는 작품도 등록기준에 포함하도록 제도가 확대되었다 한다. 작품의 폭을 넓히기 위해 이러한 제도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미술품 물납제도는 사회적 필요로 조성된 것이니만큼 이를 잘 발전시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최선의 방법을 찾는 일이 필요하다. 국공립미술관 컬렉션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영국의 ‘문화 기증제도(Cultural Gifts Scheme)’와 같은 제도를 통해 기업이나 재벌이 미술관에 대한 작품 기증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등 획기적인 제도 개선도 병행되어야 한다. 정부에선 ‘미술진흥법’을 제정하고 미술품의 감정·평가 업무와 추급권 관리, 미술은행 관련 업무 등을 전담할 ‘국립미술진흥원(가칭)’을 신설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이 조직의 업무를 보면, 문화예술위원회의 시각예술 진흥사업이나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사업들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함이겠지만, 사업의 범위가 미술품 유통과 관련된 영역으로 한정된 감이 있다. 물납 대상 미술품의 등록과 가치평가 등의 업무를 포함하여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종합적인 미술 분야 진흥을 위한 사업 재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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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23년12월11일 09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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